"그대가 버린 소맷부리서 난 운명을 빼냈소"

오현주 2021. 6. 2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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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등 떠밀었다면 되레 안 했을 일이다.

남들이 버린 걸 다시 거두는 일이니까.

거대한 옷덩이로 용틀임을 만든 설치작품, 제작한 옷걸이에 매다는 오브제조각으로 그들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얘기만 들어주는 줄 알았더니 세상이 놔버렸던 운명을 붙들기도 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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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개인전 '꽃이 지니 몰라 보겠다'
수집한 헌옷, 탈색·염색 등 무장해제 뒤
평면·설치·조각등 '다른 이야기'로 이어
소매만 떼어내 주제어 삼은 연작 50여점
김윤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We Never Came Back Home·2021), 헌옷·벽지·흙·혼합매체·나무프레임, 45×60.5㎝(사진=상업화랑).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 기자] 누가 등 떠밀었다면 되레 안 했을 일이다. 남들이 버린 걸 다시 거두는 일이니까. 쓰임이 끝났다는 결말을 뒤집는 일이니, 시즌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다. 맞다. 어떤 사물에 관한 얘기다. 그것도 어떤 이와 밀착관계에 빠졌던 그것, ‘헌옷’이다.

세상에 사연 없는 물건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그게 누군가의 피부에 닿았던 옷이라면 좀 다른 얘기가 된다. 작가 김윤아의 작업이 바로 그거다. ‘좀 다른 얘기’를 이어가는 것. 헌옷을 가져다가 완전 무장해제를 시킨 뒤 그들이 꺼내놓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

사실 작가의 스토리부터 남달랐다. 의류수거함에 삐죽이 나와 있던 셔츠의 소맷부리를 외면하지 못해 작업실로 데려왔던 게 이른바 ‘헌옷작가’로 들어선 계기였으니. 달랑 한 장이던 옷가지가 나중엔 언덕을, 산을 이뤘다고 했다.

김윤아 ‘가족’(Family·2021), 헌옷·도자·흙·혼합매체, 15×15×70㎝(사진=상업화랑)
그 육중한 뭄뚱이를 빨고 탈색하고 염색한 뒤, 배배 꼬아 비틀거나 쫙쫙 펴서 늘리는 ‘의식’도 직접 치렀다. 정작 작품은 이 장황하고 험난한 일로 진을 다 뺀 이후부터였다. 거대한 옷덩이로 용틀임을 만든 설치작품, 제작한 옷걸이에 매다는 오브제조각으로 그들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신작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We Never Came Back Home·2021)은 또 다른 결이다. 소매만 떼어내 주제어로 삼은 연작 중 한 점인데, 서울 중구 을지로 상업화랑에 연 개인전 ‘꽃이 지니 몰라 보겠다’의 테마이기도 하다.

오래 전 그 첫 ‘소맷부리’로 시간을 되돌리자 한 건가. 영원히 헤어질 수도 있었던 두 소매를 단단히 묶어 프레임 안에 들여놓기도, 도자 안에 세워두기도 했다. 얘기만 들어주는 줄 알았더니 세상이 놔버렸던 운명을 붙들기도 한 거였다. 마주칠 운명, 다시 태어날 운명. 전시는 7월 4일까지다.

작가 김윤아가 서울 중구 을지로 상업화랑에 연 개인전 ‘꽃이 지니 몰라 보겠다’ 전경 중 일부(사진=상업화랑).
작가 김윤아가 서울 중구 을지로 상업화랑에 연 개인전 ‘꽃이 지니 몰라 보겠다’ 전경 중 일부(사진=상업화랑).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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