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정권 교체 지도 판독법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2021. 6.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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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방향 잡고
세대 아닌 정권 교체
정밀 좌표 설정한 후
평면을 입체로 보는
안목과 상상력 갖춰
뚜벅뚜벅 나아가야!

# “달력 보는 사람은 망하고 지도 보는 사람은 흥한다.” 얼마 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사석에서 툭 던진 말이다. 서너 달 전 뵈었을 때보다 조금 더 야위셨지만 쉬지 않고 몇 시간이고 말씀하시는 것은 여전했는데 그 말의 성찬 속에서 유독 내 귀에 꽂힌 말이 이것이었다. 시간보다 공간 개념에 방점을 찍은 말이기도 했지만 이 말을 들으며 문득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 뇌리에 떠올랐다. 국민적 정서로 보자면 정권이 열 번 바뀌고도 남을 상황이라지만 정작 내년 3월에 누가 정권을 거머쥘 것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대선이 8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처럼 대선 판이 여야 할 것 없이 난맥상인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초조해져 더 그런 것일까? 대권의 향배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달력만 본다.

# 여권인 민주당은 어제 종일 당헌에 규정된 9월 경선이 빠르다며 연기하자는 논란에 휩쌓였다. 현재의 여세를 몰아 대선후보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측에서는 경선연기가 말이 안된다고 못을 박는 반면에 뒤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 추격전 내지 역전극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에 경선연기를 주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론이 어찌 나든 부질없는 논란같아 보였다. 저러다 애꿎은 달력만 찢을 것 같다.

/일러스트=양진경

# 야권도 달력만 보기는 매한가지다. 누구는 언제 출마 선언을 한다더라, 누구는 언제쯤 직을 그만두고 대선에 뛰어든다더라 하는 식으로 달력만 들척거리며 설왕설래를 이어가는데 이렇게 해서는 정말 답이 없다. 그것이 대선 판에 새로 뛰어들 사람이든, 기왕의 재수, 삼수생이든 달력만 뒤적거리고 있으면 될 것도 안 된다. 정권 교체로 가는 지도를 제대로 판독해 그에 걸맞게 몸을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젊은 엔진을 실은 국민의힘 역시 정권 교체의 주도자가 되려 한다면 그 역시 대선 버스가 언제 출발하니 그때까지 타라고 달력에 표시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정권 교체로 가는 큰 지도를 펼쳐 놓고 전략적 모객(募客)을 해야 맞지 않겠나.

# 정권 교체로 가는 큰 지도를 제대로 보려면 먼저 범례를 잘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권 교체로 가는 지도에는 동, 서, 남, 북이 따로 없다. 대신 번영, 쇠퇴, 미래, 과거가 그것들을 대체해 표시돼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또한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도 제대로 봐야 한다. 넘어야 할 대표적 산은 ‘빈부 격차의 산’과 ‘소득 격차의 산’이다. 코로나로 소득 격차는 더 커졌고, 부동산 폭등으로 빈부 격차는 지금 생에선 도저히 좁힐 수 없는 ‘넘사벽'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건너야 할 대표적인 강으로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며 도도히 흐르는 ‘이념의 강’과, 넓던 강폭이 갑자기 좁아져 취직도 결혼도 포기하게 만든 ‘세대의 강’이 있다. 그 세대의 강과 합류해 급격하게 소용돌이를 일으킨 ‘젠더의 강’도 새롭게 주목해서 봐야 할 강이다.

# 먼저, 정권 교체로 가는 지도를 제대로 판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잡는 일이다. 순례자의 길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을 때는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때는 군데군데 걸려 있는 리본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굳이 방향을 신경 쓸 필요도, 지도를 펼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대권 가도에는 그런 화살표도, 리본도 없다. 대권으로 가려면 스스로 방향을 분명히 잡아야 한다. 그 방향이 다름 아닌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 분명하면 민심이 이를 좇는다. 작금의 시대정신은 뭘까? ‘회복과 재건’이 아닐까 싶다. 상식을 회복하고 무너진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시대정신’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면 다음엔 최종 목표 지점의 좌표를 정확하게 찍어야 한다. 한데 근래 와서 좌표가 ‘정권 교체’인지 ‘세대교체’인지 헷갈리고 있다. 지금은 당면 과제가 정권 교체이지 세대교체가 아니다. 하지만 젊디젊은 국민의힘 대표 등장으로 정권 교체와 세대교체가 오버랩되다 못해 아예 ‘짬뽕’이 되어버린 나머지 최종 목표인 정권 교체의 좌표마저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세대교체와 정권 교체가 동시에 되길 기대하다가는 정작 최종 목표 지점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빠져 까딱하면 뒤집어진다. 그러니 더더욱 세대교체가 아니라 정권 교체라는 좌표 설정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해야만 한다.

# 방향을 제대로 잡고 좌표를 정확하게 찍은 다음엔 지도에 그려진 지형을 평면이 아닌 입체로 보는 안목과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지난 주말에 전남 신안군 소악도를 다녀오며 새삼 느꼈는데, 물이 빠지면 노두길이 드러나 섬과 섬들이 이어지고 물이 들어와 차버리면 노두길이 잠겨 소악도와 소기점도, 대기점도, 병풍도로 나뉘었다. 하지만 물이 들면 나뉘고 물이 빠지면 이어지는 것을 지도는 표시해주지 않는다. 스스로의 안목과 상상력으로 이를 판독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를 볼 때는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는 안목과 상상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 ‘회복과 재건’이란 시대정신을 분명히 하고, 세대교체가 아닌 정권 교체에 정밀하게 좌표를 설정한 후 평면 지도에 그려진 지형들을 안목과 상상력을 동원해 실체적으로 파악하면서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돌파하며 전진할 때 정권 교체는 비로소 가능해진다. 대권은 달력 들추며 시간 재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권은 큰 지도를 보며 시대정신의 방향을 잡고, 정권 교체라는 최종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한 후 자신은 물론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안목과 상상력을 총동원해 평면이 아닌 입체적 루트를 개척하며 전진할 때 비로소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애꿎게 달력만 들추지 말고 과감히 지도 속으로 들어가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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