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지식인에게는 고정된 주인이 없다
[경향신문]
지식인은 이 사람 저 사람을 섬겨도 된다는 뜻으로 읽히는가? 아니다. ‘사무정주(士無定主)’는 춘추전국시대 지식인이 자기 뜻을 받아줄 군주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유세하던 풍조를 가리키던 표현이다.
그러다 이 말은 차츰 지식인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말로도 쓰였다. 지식인은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도(道), 그러니까 진리라든지 보편적 가치 내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을 주인처럼 섬긴다는 뜻으로 말이다. 붕당 등의 사람들 모임이나 검찰 같은 제도적 조직 등을 섬김은 지식인의 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 참여는 공자가 온 생애를 통해 밝히 보여주었듯이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도모해야 하는 길이었다. 다만 정치 참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세상을 경영하여 만백성을 구제함으로써 왕도를 실현하는 것, 곧 어짊과 의로움의 구현이었다. 명예욕이나 권력욕, 물욕을 채우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공자가 지식인의 길은 어짊과 의로움의 실현이라는 버거운 소명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길이라고 한 까닭이다.
물론 이는 오랫동안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과연 그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수년째 공정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고, ‘ESG(친환경 Environment, 사회적 책임 Social, 윤리적 지배구조 Governance)’라는 가치가 기업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또 국제적으로 주요 화두이자 새로운 이윤 창출의 원천으로 부쩍 활용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어짊과 의로움의 구현이라는 정치의 목표를 이상이나 도덕의 과잉 등으로 치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지식인의 이러한 지향은 지금 여기에서 구현 가능한 공동이익을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다. 부조리와 불공정이 당연한 듯 자행되는 후진성을 바꿀 실질적 힘이 될 수도 있다. “지식인이란 올바른 뜻을 숭상하는 자”라는 맹자의 지적이, “지식인이란 올바른 법도를 좋아하고 이를 실천하는 자”라는 순자의 단언이 여전히 힘찬 이유다. 이 또한 유학자들의 견해일 뿐이라며 무시하는 속된 지식인에게는 말짱 헛말이지만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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