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불완전함이 주는 낭만

이대화 2021. 6.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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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이 주는 낭만

요즘 젊은 층에서 ‘로파이(Lo-Fi)’라는 음악 장르가 유행 중이다. 고음질의 하이 파이가 아닌 저음질의 로 파이를 추구하는 장르다. ‘그런 걸 왜 들어?’ 할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상당히 인기다. 유튜브에 ‘로파이’라고 검색하면 ‘로파이 힙합’ ‘로파이 재즈’ 등 많은 영상이 나온다. 잠옷처럼 편안한 사운드가 특징이라 ‘공부할 때 듣는’ ‘코딩할 때 듣기 좋은’ 같은 키워드와 함께 등장하곤 한다.

로파이가 즐겨 쓰는 기법 중 하나는 오래된 테이프 소리를 모방하는 것이다. 오래되어 늘어지거나 먹먹해진 소리를 고의적으로 흉내 내 따뜻함을 심는다. HD 시대에 오래된 VHS 비디오를 보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런 소리가 하도 인기라 몇 년 묵은 테이프 소리로 만들 것인지 설정하는 작곡 소프트웨어도 등장했다. 테이프 세월을 최대로 설정하면 음정도 엉망이고 사실상 망가진 소리가 난다. 하지만 비율을 잘 조절하면 듣기 좋은 늘어짐이 연출된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조화하면 빈티지한 풍미가 몇 배는 살아난다.

로파이가 또 좋아하는 소리는 오래된 바이닐의 타닥타닥 소리, 일명 ‘빗소리’다. 음향적으로 정의하면 소음이나 다름없지만 로파이 계열에 널리 활용될 뿐더러 팬들도 대단히 좋아한다. 밤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잠을 깨우긴커녕 오히려 훌륭한 자장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 아닐까. 바이닐 노이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이걸 어느 정도 농도로 음악 속에 삽입할지 조절하는 소프트웨어들도 나왔다. 비율이 너무 높으면 듣기 싫은 소음이 되지만 적절히 조절하면 기분 좋은 낭만을 주입할 수 있다.

일부러 고장 낸 불완전한 소리들이 인기라니 사람의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 안에는 완벽한 기술에 대한 동경과 함께 너무 짜여진 것에 대한 거부감 또한 내재되어 있는 것 아닐까. 음악 기획이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완벽함을 구현하기도 어렵지만, 완벽한 비율의 불완전함을 구현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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