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해고·실직자도 노조가입 허용.. 재계 "현장 대혼란"반발

김승범 기자 2021. 6. 2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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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노동법 시행령 의결, 구체 지침 없어 산업현장 혼란

다음 달부터 해고자나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퇴직 교원과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도 허용된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개정 노동관계법이 7월 6일 시행되기 때문이다.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는 22일 국무회의를 열어 이 법의 시행령을 의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무력화의 법적 근거가 됐던 ‘노조 아님’(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34년 만에 폐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경영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벌써부터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동관계법에 경영계가 그동안 반대해왔던 내용이 대거 반영돼 있는 상황에서, 이번 시행령에서도 해고자·실업자 노조원의 활동 범위 등 논란의 여지가 큰 주요 사안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대로 법령이 시행될 경우 “산업 현장에 큰 혼란이 닥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노동조합법·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 등 노동 관련 3법 개정안은 작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조치였다. 개정된 노동관계법 가운데 핵심은 해고자·실업자가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노조원 자격을 확대한 것이다. 다음 달 법이 시행되면 해고자·실업자가 노조에 가입할 경우 특정 사업체의 직원 신분이 아닌데도 해당 사업장에 드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에서는 ‘해고자의 노조 활동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며 오래전부터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그런데도 개정 노조법에는 이와 관련해 “사용자의 효율적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고, 시행령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지 않은 것이다.

재계는 ‘효율적 사업 운영’의 범위가 모호해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해고자 등이 사용자 승인 없이 사업장에 들어갈 수 없도록 시행령에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내놓은 시행령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해고자들이 사업장에 드나들면서 복직 요구 등 기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쏟아내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개정 노조법은 해고자 등 비종사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허용하는 기준이 추상적이고 명확하지 않아 노사 간 분쟁이 양산될 수 있다”며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면 노사 간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어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노조 아님' 통보 제도 폐지

노동부는 2013년 전교조가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시정 요구를 했으나 응하지 않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9월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행정권이 법률이 근거를 두고 행사돼야 한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무효로 판단했다. 정부의 이날 시행령 개정은 이에 따른 것으로, 행정 관청이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있도록 한 문구를 삭제했다. 대법원 판결로 제도가 실효성을 잃음에 따라 법규를 정비한 것이라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행정 관청이 노조의 결격 사유에 대해 시정 요구만 할 수 있게 했다. 결격 사유가 생긴 노조의 ‘자율적 시정’을 지원한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합법적으로 설립된 노조에 정부가 임의로 시정 요구권을 행사해 사후적으로 노조 활동에 개입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통한 직접적인 제재 수단이 없어지면서 노조가 설립 신고 때 결격 사유를 숨기면 거를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책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경총은 “노조 자격이나 적법성을 둘러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선 사후적으로 결격 사유가 발생한 노조에 대해 자율적 시정이 아닌 설립 신고를 취소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계는 노동관계법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측의 급여 금지 규정을 삭제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조가 부담하는 게 국제 표준이라는 것이다. 재계는 개정 노조법을 통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면서 교섭대표노조의 대표 지위 유지 기간을 2년으로 묶어둔 것도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사용자 대항권 확보를 위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했으나 신임 교섭대표노조가 지위 기간에 맞춰 단체협약도 2년으로 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계는 “노동관계법이 노동계 쪽으로 편향된 내용으로 가득하다”며 “이대로라면 노사 관계가 더욱 대립적으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많은 혼란이 예상되는데도 시행령에 보완 조치가 반영되지 않아 유감”이라면서 “혼란의 최소화를 위해선 시행령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계는 노동관계법 개정 과정에서 ‘파업 때 대체근로를 허용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노조의 단결권이 강화돼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 있는 힘의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해직자들이 노조에서 활동하게 되면 노조가 더욱 과격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ILO 협약을 비준한 EU(유럽연합) 등에서 허용되는 대체근로 등 사측 대항권은 주어지지 않았는데, 노동계 권한만 강화하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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