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세대 - 빅토르 펠레빈 [나푸름의 내 인생의 책 ③]

나푸름 | 소설가 2021. 6. 2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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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와 코카콜라

[경향신문]

1959년 러시아에 진출한 펩시는 1980년대부터 큰 인기를 끌며 펩시 이외에 선택지가 없던 펠레빈의 ‘P세대’의 상징이 됐다. 펩시의 독주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 코카콜라의 러시아 입성과 함께 쇠퇴한다. 개방과 동시에 물밀듯 들어온 자본주의의 단맛은 P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1991년, 젊은 세대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공산주의 아래 성장하고 러시아적 자본주의 아래 생존해야 했던 이들은 소련의 영원성에 기반한 기존의 삶에서조차 강제적으로 내몰린다.

이는 <P세대>의 주인공 타타르스키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영원성이라는 꿈에서 깨어난 뒤 문학을 포기하고 카피라이터로 살아간다. 타타르스키의 혁신적인 광고는 체호프, 마야코프스키의 문학과 러시아 신화 속 영웅을 활용하여 맥도널드, 나이키로 대표되는 서양 자본주의와 당대 러시아 전체에 들끓었던 소유욕에 일조한다.

타타르스키가 문학에서 TV 광고로 시선을 돌린 것은 당대 러시아 문학의 위기와 맞물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순수문학의 권위는 상업지와 대중문학에 밀려 어느새 설 자리를 잃고, 지식인들은 책이 아닌 TV를 통해 사상과 이념을 공유하였다. 이는 소련 시절 공산당의 선전이 국영방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도 연관되나, 20세기 말의 러시아 사회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학을 뒤로하고, TV 속 현란한 이미지에 매혹되었던 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을 포기한 타타르스키가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에 근거한 광고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봉에 선 펠레빈의 문학적 시도들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건 그의 성공이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푸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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