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씨앗은 잘 나갈때 뿌려진다” 위기의 실리콘밸리 리더십

박건형 기자 2021. 6. 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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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씨앗은 잘나갈때 뿌려진다” NYT
구글 피차이·페이스북 저커버그 CEO

끊임없는 혁신으로 전 세계인의 삶을 바꾼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내부에서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확산의 수혜를 받으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 얘기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소극적인 의사결정으로 ‘혁신의 상징 구글에서 혁신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직원뿐 아니라 대중의 신뢰까지 잃으며 회사 이미지 추락의 원흉으로 지목당하는 처지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현지 시각)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몰락의 씨앗은 모든 것이 잘되고 있을 때 뿌려진다”고 했다. CEO의 리더십 문제가 결국 두 회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급속한 성장에 따른 각종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한국 IT 업계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정 못하는 피차이”

맥킨지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4년 구글에 합류한 피차이는 2015년 CEO에 올랐다. 그가 CEO를 맡은 뒤 구글 직원은 14만명으로 두 배가 됐고, 시가총액은 세 배로 뛰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차이는 거대해진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안전한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최소한 36명의 부사장이 구글을 그만뒀다. 400명에 이르는 구글 부사장은 내부 각 조직을 이끄는 핵심인데 이 중 10% 가까운 인력이 떠난 것이다. NYT는 “피차이가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라고 전했다.

피차이의 성향은 구글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 쇼핑업체 ‘쇼피파이’ 인수 실패다. 구글 임원 대부분이 ‘아마존과의 경쟁을 위해 쇼피파이를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피차이는 ‘가격이 비싸다’며 거부했다. 구글의 인수 포기 이후 쇼피파이는 기업 가치가 10배 이상 오르며 아마존의 유력한 대항마로 주목받고 있다.

지나치게 심사숙고하는 피차이의 인사 방식도 불만을 사고 있다.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한 실리콘밸리에서는 과감한 인재 영입이 중요한데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피차이가 2018년 1년 고민 끝에 회사 법률 담당 임원을 결정했는데, 최종 선임된 임원은 내부인이자 첫 후보 리스트에 있던 인물이었다. NYT는 “임원 상당수가 구글에 (피차이보다) 더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에 대한 불만도 회사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저커버그는 지난 16일 글로벌 구인 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가 선정한 ‘종업원이 뽑은 최고의 CEO 100’에서 처음으로 순위에 들지 못했다. 저커버그는 2013년 첫 조사에서 1위였지만, 매년 순위가 떨어진 끝에 아예 리스트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순위는 오로지 내부 직원들의 평가로 결정된다. 포브스는 “유명인 이미지 조사에서 저커버그는 호감도가 20%에 그쳤고 주요 온라인 서비스 기업 중 페이스북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며 “증오 조장, 개인정보 유출 같은 각종 논란에 대한 저커버그의 소극적인 대응이 낳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페이스북 내부에선 저커버그의 제왕적 리더십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페이스북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확산되는 위기 상황인데도 주변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도 반면교사 삼아야

IT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의 리더십 논란이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해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같은 국내 인터넷·게임 기업들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처럼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급성장했다. 조직이 방대해지고 사업 영역이 확대된 데 맞춰 리더십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이들 기업은 조직 문화, 근로 조건, 성과급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는 일부 핵심 임원들이 의사 결정을 독점하며 벤처 문화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카카오는 100개가 넘는 계열사가 난립하면서 조직 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온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거대해진 인터넷 기업에서는 창업자와 CEO의 의사 결정과 적절한 권한 위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인터넷 기업들은 혁신과 변화가 정체되는 순간 경쟁력이 사라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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