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생태탕', 그리고 음모론의 종말

박양수 2021. 6. 22. 19: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양수 콘텐츠 에디터
박양수 콘텐츠 에디터

'내곡동 생태탕'이 쑥 들어가자 '윤석열 X파일'이 떴다. 기획자는 이번에도 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전자가 4·7 재보궐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면, 후자는 내년 대선의 야권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다. '내곡동 생태탕'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5년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왔다가 생태탕집에 들렀다고 말한 식당 주인이 진술을 번복하면서 '생떼탕' 등 패러디물만 잔뜩 남긴 채 유야무야됐다.

'윤석열 X파일'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 '유령' 상태 파일의 의도가 문재인 정권의 '윤석열 죽이기'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언론 등 세간의 관심도 파일의 내용이 뭐냐에 쏠려 있다. 파일을 입수했다면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의 의도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폭로 공작 정치의 공식에 의하면 이미 절반쯤 진행된 셈이다.

파일 존재와 내용의 진위를 떠나 냄새만 풍김으로써 의도했던 정치적 효과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

선거와 음모론, 혹은 흑색선전은 바늘과 실의 관계다. 음모론과 폭로 공작 정치는 대부분 형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기획·생산된다. 각자 맡은 역할대로 일정한 준비과정을 거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폭로되고 정치 쟁점화한 뒤, 여론몰이가 시작된다. 진실로 위장하기 위한 조작된 증거, 증인 등이 동원된다. 이런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국민들은 집단 최면상태에 빠져 조작된 사실을 진실인양 믿게 된다. 분노한 민심에 시민단체들이 적극 개입함으로써 당사자에 대한 국민의 배신감과 실망, 증오심이 정점에 달하면 어느새 공작은 끝을 맺는다.

안타까운 건 나중에 폭로 사실이 허위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때쯤이면 국민의 뇌리에선 잊혀진 사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공작 정치의 기획자와 폭로자, 선동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희생양이 되는 당사자만 억울할 뿐이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와 관련된 이른바 '김대업 병풍 사건'에도 이 공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2002년 4월 김대업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로 뇌관을 터뜨리자, 여론몰이와 정치쟁점화에 이은 시민단체의 개입이 이뤄졌고 이 후보는 낙선했다. 당시 이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비리의혹과 관련, 수사 당국이 "김대업의 폭로는 허위"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음모론과 폭로 공작정치가 없었던 정권은 없다. 성숙한 민주 시민사회에선 그같은 거짓말과 선전 선동이 통하지 않는다. 반면 독재 국가나 파시스트 성향이 강한 사회에선 훌륭한 통치수단이 될 수 있다. 절대 권력자를 열렬히 추종하는 대중에겐 거짓말과 선전·선동이 잘 먹히기 때문이다. 자기편 선동가들이 만들어 유포하는 음모론과 거짓말을 맹신하는 추종자들은 자신의 믿음과 상충되는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 반지'의 주인이 만들어 주는 '가상 세계'에 살면서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믿으며 사는 것이다.

문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인 '문빠'나 '대깨문'의 세상에선 '윤석열 죽이기'가 검찰개혁과 동의어다. 법치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파괴되고, 헌법정신이 훼손돼도 개의치 않는다. 의석 180석의 거대 권력을 거머쥔 문 정권은 행정·입법·사법부를 장악했고, 의회정치를 비웃으며 전 국민을 포퓰리즘에 젖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문재인 보유국'인 것이다.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는 지난 4년간 침묵하고 있던 '민심의 바다'의 무서움을 보여줬다. '생태탕'은 '생떼탕'이 됐다. 부산 시민을 얕잡아 본 정부·여당은 가덕도신공항특별법만 통과시키면 선거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봤지만, 무위로 끝났다. 높아진 국민 의식 앞에선 음모론과 폭로 정치, 악성 포퓰리즘이 더 이상 힘을 못 쓴다는 진실을 보여준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정치에도 세대 교체와 변화를 갈망하는 민심의 요구가 '이준석 현상'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문 정권은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태탕' 'X파일'과 같은 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내년 대선에서 재보궐선거 이상의 호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쇼'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콘텐츠 에디터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