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세대 문제, 시대의 숙제 / 신진욱

한겨레 2021. 6. 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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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세대’ 문제가 계속 한국 사회와 정치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여러 피상적인 세대론이 난무하면서 사회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지만, 그와 별개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세대’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현상이며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대교체론의 진원은 정치 영역이다. 젊은 세대는 몇년 전만 해도 압도적 다수가 스스로 ‘진보’라고 평가했고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지지했지만 점점 더 많은 이가 ‘탈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탈진보파의 다수는 이념과 가치가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비보수’로 남은 채 보수 정치세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기성 여야 정치권과 진보·보수 진영에 모두 거리를 두며 ‘판의 변화’를 갈구하는 태도는 20대에서 30대, 40대로 확산되고 있다. 노인층의 다수는 오래전에 완고한 보수층으로 고착되어 낡은 갈등구조를 뛰어넘는 변화의 추동력이 되지 않는 가운데, 젊은 연령층이 기존의 진보·보수 지도층을 동시에 넘어서는 새판짜기를 열망하고 있는 상황이 ‘세대교체론’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세대교체는 문제가 드러나는 형식이지 문제의 내용적 본질이 아니다. 지금 젊은 세대의 다수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대갈등이 아니다. 일자리, 소득, 노동, 주거, 미래 불안 같은 경제문제가 핵심이다. 이 엄중한 삶의 현실을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도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절망감이, 모든 ‘과거의 것’에 대한 불신이라는 세대적 문제틀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이때 세대적 문제로 발현되는 현실의 저변에는 오랫동안 해결이 지체되어온 시대적 문제가 놓여 있다. 세대교체라는 문제틀은, 여러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숙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기성세대 엘리트 집단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 위에서 배양되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적 숙제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해결되지 못한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의 문제다.

이것이 지금 세대 문제로 표출되는 이유는 지난 20여년 동안 정치·이념 대결로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민주화와 시민적 자유의 큰 진전을 이뤘지만 경제불평등 문제를 심화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국민성공시대’와 ‘복지·경제민주화’를 내걸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은 평등·공정·정의를 표방했지만 일자리, 부동산, 노동 문제 등이 여전히 심각하다.

‘이준석 현상’은 이러한 시대 상황의 산물이다. 여야의 기성 정치권을 모두 신뢰하지 않게 된 유권자들이 ‘과거’에 속하지 않는 이를 권력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세대교체론의 근원인 시대적 문제에 대한 응답은 보이지 않는다. 반페미니즘, 공정경쟁론 같은 메시지는 오늘날 다수 청년과 시민의 절박한 현실을 모두 우회한다. 우리 사회의 중심 문제와 진지하게 대결하는 가치와 세력이 거기엔 없다.

한편 진보 쪽의 사정은 거울상의 대조를 보인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부조리에 맞서는 젊은 세대의 사회운동과 가치공동체가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까지 기존 정치권에 도전하는 독자적 정치주체가 되기보다는, 정부·지자체와 기성 정치권의 선택과 초대에 의해 그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어 들어가는 한계를 보인다. 시대를 바꿀 힘이 아직은 약한 것이다.

우리 역사가 미래로 더 전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현대의 세대론에 깊은 영감을 준 예술사가 빌헬름 핀더는 1926년에 출간한 <유럽 예술사에서 세대의 문제>에서 ‘동시적인 것의 비동시성’ 또는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라는 중대한 화두를 던졌는데, 그가 주목한 것은 동일한 시점에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데서 생겨나는 다면적인 역동, 마치 다성음악과 같은 역사의 리듬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옛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오는 직선적, 법칙적 과정일 수 없다. 공존하는 여러 세대의 다양한 문제와 해법, 그 담지세력들의 경합이 역사를 만든다. 윗세대의 양보라는 온정적 윤리학, 세대교체라는 공허한 생물학으로 미래는 오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의 주역들이 시대의 문제에 대한 응답을 깃발에 새겨 발을 쿵쿵 구르며 행진할 때 낡은 질서가 비로소 흔들릴 것이다. 멀리서 땅의 진동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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