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우리의 걸음을 막아서는 것들 / 노은주·임형남

한겨레 2021. 6. 22. 14: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그렇듯 늘 운동 부족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산다.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에 등록도 해보지만, 한달에 며칠도 못 채우며 포기하기 일쑤였다.

동네 끄트머리에 숨어 있어 그런 길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나무가 무성한 안쪽으로 여러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걷기 예찬까지는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 좋은 습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노은주·임형남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대부분의 현대인이 그렇듯 늘 운동 부족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산다.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에 등록도 해보지만, 한달에 며칠도 못 채우며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에서 아주 참한 산책길을 발견했다. 동네 끄트머리에 숨어 있어 그런 길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나무가 무성한 안쪽으로 여러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집 주변에 걷기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우리는 그 길을 여러번 왕복하며 매일 6㎞ 정도 걷는다. 대략 만보를 걸으며 과영양 시대의 잔여 열량을 200칼로리 정도 덜어낸다.

걷기 예찬까지는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 좋은 습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특별한 도구나 운동복이 필요 없어 간편하고, 평상복 차림으로 아무 때나 잠시 나가면 된다. 종일 흙 밟을 일이 없는 도시 생활에서 찰진 흙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일은 아주 특별하고, 걷다 보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무엇보다 걷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여러 가지 생각의 가닥을 잡아나갈 수 있어서 좋다.

동네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서 있는 그 길을 지금 13년째 걷고 있다. 봄이면 산수유부터 피어나며 온갖 꽃이 한 해의 문을 여는 감동을 함께하기도 하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큰 우산처럼 펼쳐진 나무 그늘의 안온함에 푹 빠지기도 한다. 요란한 근린공원이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산길의 한 귀퉁이를 잘라서 가져다 놓은 듯 자연스러워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구청에서 그 길에 정기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무와 바위와 풀들이 적당히 자리를 잡아 오래된 나무벤치에도 연륜이 앉은 길에, 어느 날 포클레인과 트럭이 들어와 벤치를 쓰러트리고 비워둔 곳이 나대지라며 풀을 가득 심고 멀쩡한 흙길에 야자매트를 깐다. 사람들은 길을 가로막은 중장비 때문에 정작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피해 다닌다.

이용객들이 아무런 불편이 없고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데도 매년 공사를 하니 새것이나 다름없는 시설물이 자꾸 교체되고 수목들은 자랄 새가 없다. 문제는 시간이 쌓이고 편안해진 길을 많은 세금을 들여 다시 생경하게 만들어버리고, 심지어 예전보다 못한 경관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예전에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들어내 다시 포장하는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었다. 확보된 예산이라 써야 한다는 논리로 지자체가 관례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금이 남아돈다면 아름다운 산책로를 망치는 데 쓰지 말고 더 절실한 곳에 사용하는 방법을 제발 찾기 바란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