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의료체계가 낳은 비극..50만명 숨진 브라질은 어쩌다 비극적 죽음을 막지 못했나

이현경 기자 2021. 6. 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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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찾아나선 코로나 환자들 '부메랑 효과' 확산 주요 원인
브라질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역으로 퍼지는 데는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에 표기된 도시들은 치료를 받기 위한 코로나19 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이를 통해 코로나19를 브라질 전역으로 다시 전파하는 ‘부메랑 효과’를 일으켰다.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브라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50만 명을 넘어섰다. 브라질 보건부 집계 기준 19일(현지시간) 누적 사망자는 50만800명을 기록했다. 단일 국가에서 코로나19로 누적 사망자가 50만 명을 넘은 것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2020년 6월 누적 사망자가 5만 명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10배 이상 사망자가 늘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코로나19 통계 기준에 따르면 22일 브라질의 누적 사망자는 50만1825명으로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사망자(387만373명)의 약 13%를 차지한다. 이날 신규 확진자는 4만4178명, 사망자는 1025명으로 브라질에서는 코로나19 3차 확산이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브라질 공동 연구팀은 브라질 정부가 지난해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로의 인구 이동 차단에 실패했고, 이는 상파울루가 코로나19 유행의 거점이 돼 브라질 전역으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부메랑 효과’를 내면서 바이러스 전파 차단에 실패했다는 분석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2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브라질에서 코로나19 1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 1일, 6월 1일, 8월 1일 세 날짜를 기준으로 이 기간 주요 고속도로의 인구 이동량과 지역별 코로나19 사망자를 조사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시점은 지난해 2월 말로 상파울루 국제공항 입국자로 추정된다. 이후 지난해 3월 한 달간 브라질 내 코로나19 확진자의 85%는 상파울루에서 발생했다. 이후 코로나19는 브라질의 주요 16개 도시를 따라 서서히 퍼졌다. 

문제는 이렇게 브라질 전역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내륙의 시골과 작은 도시에까지 바이러스가 번지자 병원을 찾기 위해 이들 지역 인구가 다시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의 의료시설을 찾기 위해 이동이 많아졌고, 이는 상파울루를 통해 바이러스가 재확산되는 ‘부메랑 효과’를 낳았다. 

지난해 4월 1일, 6월 1일, 8월 1일(왼쪽부터 순서대로) 브라질에서 고속도로를 통한 인구의 이동을 조사한 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양상이 확연히 보인다.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연구에 따르면 상파울루에는 브라질의 464개 도시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몰려들어 바이러스 전파의 가장 큰 고리 역할을 하며 슈퍼 확산을 낳는 부메랑 효과를 일으켰다. 이어서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주도인 벨루오리존치(351개 도시), 바이아주 주도인 살바도르(332개 도시), 고이아스주 주도인 고이아니아(258개 도시), 페르남부쿠주 항구 도시인 레시페와 피아우이주 주도인 테레지나(각 255개 도시) 순으로 조사됐다. 

또 상파울루는 브라질 전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몰려들면서 의료기관이 환자 수용 능력을 넘어서자 158개 도시로 환자를 이송해 부메랑 효과를 키웠다. 리우데자네이루(73개 도시), 상파울루 북동쪽 도시인 과률류스(41개 도시) 등도 다른 도시로 환자를 많이 이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에 참여한 라파엘 라이문도 브라질 연방대 파라이바-캠퍼스 IV 환경공학부 교수는 “우리 연구는 고속도로 이동 제한이나 한시적 차단 같은 조치가 유행 초기 국가적 규모나 지역 수준에서 시행됐더라면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라며 “브라질은 ‘SUS’라는 공공 보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만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이끈 미게우 니콜렐리스 미국 듀크대 의대 신경과학부 교수 겸 브라질 에드먼드&릴리 국제신경과학연구소장은 “브라질 정부가 지난해 상파울루와 같은 슈퍼 확산을 일으킨 대도시로 통하는 도로의 이동을 제한하는 등 방역 조처를 적절히 취했다면 1차 유행 규모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이는 이후의 2차 유행 규모도 줄이는 연쇄 효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니콜렐리스 교수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사망자가 5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12개월 만에 10배가 증가했다는 점은 브라질 정부가 역사상 최악의 비극에서 브라질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브라질 출신인 니콜렐리스 교수는 두뇌와 기계장치를 연결하는 ‘뇌-기계 연결(BMI)’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뇌-기계 연결 장치로 2014년 6월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 당시 하체 마비 환자에게 웨어러블 외골격 로봇을 입혀 월드컵 시작을 알리는 시축 행사를 하는 데 성공하는 등 브라질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꼽힌다.

니콜렐리스 교수는 “브라질 정부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유행 초기 이에 대응할 국가 과학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국가 차원의 캠페인을 진행하며 주요 고속도로의 이동을 어느 정도만 통제했더라도 지금 수만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N은 19일(현지시간) 니콜렐리스 교수가 브라질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7월에는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올해 1월에 이미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CNN에 “당시 사람들은 이 숫자가 과장됐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브라질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이유는 과학적 대처와 감염병 유행의 기본 방역 수칙인 물리적 거리두기 등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브라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코로나19 역학 조사인 ‘에피코비드(EPICOVID)-19’의 수석 과학자이자 브라질 펠로타스연방대 페드로 할랄 교수는 올해 1월 30일 의학학술지 ‘랜싯’에 브라질에서 코로나19 유행 초기 지역적, 인종적 통계 등의 분석 결과를 보건부에 전달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지난해 7월 연구비 지원도 중단됐다고 밝혔다. 에피코비드-19는 현재 다른 기관의 지원으로 브라질의 코로나19 유행과 관련된 역학 조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할랄 교수는 기본적인 감염병 예방 수칙만 따라도 브라질에서 4명 중 3명이 사망을 피할 수 있으며, 브라질 정부가 다른 나라의 정부처럼 코로나19에 맞서 싸웠다면 5명 중 4명은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브라질 인구는 2억1100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7%이며, 그간의 전 세계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평균 사망률을 볼 때 브라질이 전 세계 사망자의 2.7%를 차지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누적 사망자는 5만6311명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1월 21일 이미 이를 넘겨 21만2893명이 사망했다”며 브라질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현경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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