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人사이드②] 매일밤 8시.. 제주시 한복판엔 그녀의 라이브가 흐른다

제주행플특별취재팀 김승우 2021. 6. 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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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가요제서 수상할 정도로 수준굽 노래·연주 실력 갖춰
공연부터 전시·시 낭송회 등 10년간 다양한 행사 펼치며 제주 복합문화공간으로 각광
"음악·예술로 힐링받으세요"

제주에 가면 어떤 카페를 들를까. 바람이 부는 곶자왈 입구의 고즈넉한 찻집이나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풍광어린 카페가 즐비한 곳이 제주이다. 도내에는 무려 1517개의 카페가 있다(올해 1월 제주도청 집계 기준). 최근 1년 새 카페가 284곳 늘어 성장세가 전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많은 카페 중에서도 ‘명물’로 소문난 곳은 한라산이나 바닷가와는 동떨어진 제주시 한복판에 있었다. 제주시 남광로에 있는 20평 남짓의 작은 카페 ‘한나스토리’다.

카페 '한나스토리' 전경.

중앙여고 동쪽 후문에 자리 잡은 한나스토리가 제주의 장점을 활용하지 않고도 단연 입소문에 오른 것은 카페 주인 이나경 대표(53) 덕분이다. 노래하는 카페 주인이 예술과 문화에 목마른 제주도민들의 발길을 붙잡는 것이다. 그가 이 카페를 연 것은 2011년이었다. 지난 10년간 이 씨는 매일 저녁 8시에 라이브 공연을 열어왔다. 젊은 시절 각종 가요제에서 수상하며 가수를 꿈꿨던 재능을 ‘한나스토리’에서 펼치고 있는 것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부터 노사연의 ‘바람’까지 선곡도 다양하다. 수준급 노래 실력 때문에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이 제법 많다.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의 밤을 위로해주는 음유시인의 목소리에 기대는 도민들이다.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사이먼 앤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ra Pasa)’를 부르고 있는 이나경 씨.

이 씨는 원래 경기도 안양 출신이다. 1989년 친구 소개로 제주에 들어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이후 무려 30여년을 제주에 머무르며, 여러 일을 했다. 어린이집 교사를 했었고, 음식점도 운영한 적이 있다. 만학도로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갑작스레 여성질환을 얻어 “죽다 살아났”을 정도의 경험을 한 뒤 정신을 차렸다. “타인보다는 나에게 집중하고, 하루하루를 좀 더 의미 있게 살자.”

인생의 목표를 이렇게 정한 이나경 씨는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돈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장소로 카페를 골랐다. 가수가 되려고 대학가요제에도 나갔던 예전의 꿈도 다시 살릴 기회였다. 카페 안에 기타를 걸고, 피아노 2대를 설치하는 등의 실내외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간판도 이 씨 필체로 썼다. 5년 넘게 서양화를 공부한 경력으로 자신의 그림도 여러 점 전시했다.

카페 곳곳에 전시된 이나경 씨의 작품들.

이 씨가 생각하는 카페의 의미는 그저 음료만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치유받는 공간이었다. “때로는 고민을 토로하고, 때로는 음악과 예술로 손님들이 힐링할 수 있는 카페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19 확산 전까지 문학 스터디, 출판 기념식, 시 낭송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연 것도 그래서였다. 그야말로 제주의 ‘사랑방’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여기에 건강차를 더했다. 다도(茶道)사범 1급 자격증을 보유한 이나경 씨가 제주 토종 밀감인 ‘진귤’을 직접 따와 모과, 대추, 계피, 무화과 등 11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일종의 발효차다. 밤마다 좋은 차에 예술이 한자락 펼쳐지는 곳이라면 소문이 안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한나스토리에는 예약 제도가 없지만, “꼭 예약을 받아달라”며 전화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각종 소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 내부.

이나경 씨는 “처음에는 오롯이 내 마음, 나 자신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오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배려는 나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돼요.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이도 사랑할 수 없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카페주인의 얼굴에 편안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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