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디지털 복지, 뉴 패러다임 찾아라>대규모 사업 초기부터 정부·전문가·이해당사자 '참여적 의사결정'시급

이용권 기자 2021. 6. 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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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中 공공 갈등 해소방안

기존 탈원전·사드·신공항 등에

최근 AI·원격의료 갈등도 예고

찬성·반대 이분법적 접근으로

사회의 건전한 발전 가로막아

美 1976년 분쟁해결 운동 시작

英 정책 초기부터 협의제 운영

佛은 국가공공토론위원회 발족

이슈 관련 문제 투명하게 공개

근본적 해결책 찾는 장치 필요

대한민국은 탈원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립 갈등, 동남권신공항 건설 문제 등 사회적·국가적 사안에 대한 공공갈등을 끊임없이 겪어 왔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인공지능(AI), 원격의료, 유전자 가위, 가상화폐 등 기존과 다른 새로운 유형의 갈등도 예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의 여파가 세대 간, 성별 간, 계층 간, 이념 간 갈등 등으로 범위를 확산하면서 이질 집단에 대한 반감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등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갈등을 우리보다 앞서 경험해온 선진국들은 시스템부터 개선했다. 공공갈등 위원회를 통해 갈등관리과정을 모든 국책사업에 적용하고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중립적인 제3자 역할을 하며 조정과 중재의 권고안을 만들고 이를 통해 합의된 결과물을 도출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으로 ‘한국사회의 공공갈등 사례를 통해 본 조정(mediation), 참여형 갈등관리, 예방적(preventive) 접근의 활용과 해외 시스템 연구’를 수행한 김대중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들은 참여적 의사결정으로 공공갈등을 해소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갈등을 찬성과 반대,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적 해결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초기 단계부터 사업 진행 방향을 전문가, 정부, 사업자, 주민 및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함께 공유해 사업을 완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해외는 사전에 갈등관리 예방 = 프랑스, 영국, 미국의 갈등관리 제도의 특징은 갈등해결에 있어 사전적이고 예방적인 갈등관리 방안에 많은 관심을 둔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1997년 환경개발부 산하에 ‘국가공공토론위원회’를 만든 뒤 2002년 독립행정기관으로 발족시켰다. 국가공공토론위원회는 정부가 시행하는 대규모 건설사업, 환경정책, 시설사업에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특히, 주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공공토론이 이뤄지게 한다. 지난 2007년 프랑스 남부 대도시 툴루즈를 우회하는 유료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불거졌던 갈등이 이러한 공공토론을 통해 해소됐다. 모든 사업계획을 주민들에게 미리 투명하게 공지한 뒤 총 16번의 공청회를 거쳐 새 우회도로 건설보다는 다른 도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자 프랑스 정부가 이를 반영하면서 일단락됐다.

영국은 정책과정 초기부터 시민과 정책 이해관계자들의 협의를 거치는 ‘협의(consultation)와 개입제도(engagement)’를 시행하고 있다. 법적 구속력을 통한 갈등관리보다는 내부 행정규칙을 통해 공공갈등의 예방과 조정에 노력하고 있다. 서면협의, 공공참여, 공공개입 등으로 이뤄지는 ‘시민협의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에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은 누구나 국가정책 이슈사이트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미국은 하버드 로스쿨의 프랭크 샌더 교수가 1976년 발표한 ‘대안적 분쟁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운동이 갈등관리제도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전통적인 법원 소송의 비효율과 고비용 등을 개선하기 위해 조정, 중재(arbitration), 협상(negotiation) 등의 대체적 분쟁해결제도를 제시했다. ADR는 이후 1980년대 미 연방과 주정부가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고 1990년대에 ‘협상규칙제정법’과 ‘행정분쟁해결법’ 등을 통해 제도화된 뒤, 최근까지 발전하면서 분쟁해결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사례는 2009년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주민, 환경기관 등 다수의 갈등이 얽혀 있던 캘리포니아주 송전선로 건설사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이 가장 예민한 갈등 포인트였는데, 캘리포니아주는 미리 경과지를 선정한 후 주민의 동의 여부를 묻지 않고 사업계획 구체화 이전 단계에서 주민 및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의견을 수렴해 최종 대안을 도출했다.

◇가치 대립 많은 한국 갈등= 한국은 사회 민주화에 따른 기본적인 권리나 지역사회의 이권, 환경 등 기본적인 인간 생활의 문제, 급진·단기적이거나 혹은 이해관계 갈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서처럼 만성적이고도 가치적인 갈등들이 첨예화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대표적 갈등 사례 중에는 먼저 1990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낙동강 수계 물 갈등을 꼽을 수 있다. 경북도와 대구시가 낙동강과 인접한 대구 위천리 지역에 304만 평 규모의 위천공단 건설을 추진했다가 낙동강 하류 부산시와 경남도가 취수원인 낙동강의 수질오염을 이유로 사업 취소를 요구하면서 불거진 갈등이다. 낙동강 통합 물관리 위원회가 3개월여 동안 가동되고 정부에 반영되는 등 국가 물관리 위원회의 일원화된 물관리 체계가 탄생하는 계기는 됐지만, 여전히 낙동강 수계 문제는 진행 중이다. 또 영남권 신공항 유치와 관련된 갈등 역시 한국사회 내 대표적인 지자체 간 공공갈등에 해당된다.

두 사례는 지역에 갈등조정 메커니즘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문제다. 지자체 간에 공공갈등이 발생하면 우선 행정협력을 시도하지만, 두 지역 간 실질적 조정의 권한이나 이익 배분의 여력이 없는 탓에 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어 사례의 중대성에 대한 언론 보도, 시민단체의 여론 호도 등을 통해 정치 이슈화로 확산하게 되면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의 개입이 어려워진다. 결국 이슈가 장기화하게 돼 각종 선거 등으로 정치 이슈화 범위가 넓어지면서 해당 사안은 더 이상 협상이나 조정의 대상이 아닌 지자체 간 치킨게임 현상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기본적인 가치문제의 갈등이 더 깊어지기 전에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공공갈등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식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변화시켜야 한다”며 “이슈와 관련한 제반 문제를 공공 시민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문화일보 · 아산사회복지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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