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당선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민자사업의 역습

2021. 6.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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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임승차자에게 요금을 부과하는 이유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단언컨대 신분당선은 국토부와 기재부 관료들이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에게 날린 엿이다. 수도권 광역전철망으로 포함되는 노선이지만 민영철도다. 서울 강남에서 수원 광교까지 고작 13개 역을 달리는데 이 구간을 나눠 운영자가 다르다. 신분당선 1단계 구간은 강남에서 정자까지 고작 6개 역인데 재벌 건설사들이 출자한 신분당선 주식회사가 주인이다.

정자에서 광교까지는 8개 역이고 역시 1단계 구간에 출자한 재벌 건설사들이 살짝 구성을 바꿔 경기철도 주식회사란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신분당선은 북부 연장 사업으로 강남에서 용산까지 이어지는데 이 구간의 책임사는 새서울철도주식회사이다. 신분당선 주식회사와 경기철도 주식회사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출자사는 두산 건설이고 새서울철도주식회사는 두산건설의 자회사이다.

신분당선은 정부나 지자체의 재정부담을 줄이고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인프라 사업에 진출한다는 민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결과는 정부나 지자체가 공적 책임을 외면하고 발생하는 피해는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만약 경인선 전철이나 지하철 2호선 6~7개 역을 묶어서 여러 민영회사에 운영권을 주고 알아서 수익을 챙겨가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분당선은 국토부와 기재부 관료들 그리고 재벌이 결탁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공공부문에 토건 재벌들을 진출시켰고 슬그머니 확장을 하고 있다. 수도권 시민들의 강남 접근을 위해 필요한 노선이다 보니 소유 관계, 즉 민영철도 여부는 당장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카펫 아래 숨겨놓은 쓰레기가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공을 바탕으로 노선을 쪼개 여러 운영사를 심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민자철도란 이름으로 요금도 비싸지만 국토부가 나서서 요금체계를 인증했다. 소유하지 못하면 통제하지 못한다. 공공철도의 주인이 시민이라면 민영철도의 주인은 기업이다. 시민들은 기업의 처분에 따라야만 한다. 결국 신분당선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법체계에서 결론이 난다. 문제는 한국 사법체계 속 거대 로펌과 공공성에 대한 철학이 없는 재판부가 만날 때 승자는 뻔하다는 사실이다. 재벌 손해는 명백함에 비해 시민들의 피해는 광장에 퍼지는 눈송이 같기 때문이다.

재벌집단은 영리했다. 수익 악화 문제를 65세 이상 노인 무임폐지로 치고 나왔다. 전국의 지하철 운영기관이 65세 이상 무임 제도로 인한 재정 악화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나설 때 신분당선은 전격적으로 폐지안을 들고나왔다. 민영철도 다운 발상이다. 더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지역, 학벌, 남녀, 세대 등 온갖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5세에서 70세 까지의 젊은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겠다는 주장은 손해 보지 않는 장사이다.

더구나 2030 젊은 세대들을 비롯한 중장년 세대들은 노인들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대중교통에서 간헐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일부 노인들의 안하무인 행태가 확증편향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나의 견해를 밝히자면, 65세 이상 노인에게 대중교통 요금을 징수하자는 안은 한국 사회를 몇 걸음 뒤로 퇴보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대중 교통요금은 65세 이상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무료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미친놈이란 욕을 먹을 것이 분명하기에 일정한 타협으로 이동권 보장에 근거한 사회적 요금 감면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취업도 알바도 학업도 어려운 20대에게 65세 이상 노인들처럼 대중교통 무임 제도를 도입하면 안될까?

근대 이후 자유로운 이동은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거대도시가 형성되고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대규모로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열망하는 무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교통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고 저렴하게 시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빌리티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요소이자 시민들에 부여된 기본권에 가깝다. 때문에 국가가 공공교통을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 관료와 기업이 개입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대중교통 무임 논란에 대해 어떤 이들은 세대 간 이해 또는 늘어난 수명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한국 공공교통의 재정구조에 대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국 지자체 지하철 운영기관의 주 수입원은 운임수익이다. 서울 교통공사의 21년 예산 계획을 살펴보자.

▲2021년 서울 교통공사 예산편성
위 표는 서울 교통공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21년 예산편성 항목 중 전체 예산 규모 파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대여금 회수 항목 등 일부 소액지분을 빼고 다시 구성한 것이다. 교통공사의 재정구조를 보면 영업수익과 부채의 2가지 항목이 90%를 점유한다. 지하철 운영을 위해 빌려오는 부채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서울 지하철은 영업수익, 즉 시민들이 내는 요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된다. 이것은 전국의 다른 지하철 운영기관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 같은 재정구조로 인해 지하철 적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경영 측면에서는 인력감축이나 외주화, 안전투자 유보가 시도되고 사회적으로는 요금 인상이나 무임혜택 축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고 보조금은 열악하고 운임수익으로만 지탱되는 조건에서 무임승차자에 대한 요금부과 추진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동물처럼 참기 힘든 욕망이다.

무임축소 논란은 국가나 지자체가 지금까지 공공교통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시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보편서비스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대가를 지불하고 편익을 취하는 것이 공공교통이었다. 교통인프라는 단순히 운영자와 이용자 관계를 벗어난다. 재정 부문만 따져봐도 공동체가 지불하는 세금이 바탕이 된다. 지하철과 상관이 없는 제주도민들이 낸 세금도 쓰일 수 있다. 갑자기 역이 생기면서 주변 지역 주민들은 집값 상승이란 이득도 얻는다. 미래 도시 계획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교통인프라가 소수의 전유물이나 특정 지역과 계층의 이익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교통부분의 모달시프트, 즉 도로교통에서 궤도 교통으로, 자가용에서 공공교통으로의 전환 계획도 마련되어야 한다.

일단 지하철 운영기관의 재정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뉴욕이나 런던, 파리 교통공사처럼 재정 수익이 운영기관 전체 수입구조의 40~50%선을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운임수익의 절대비가 낮아질수록 무임제도로 인한 손실이 줄어들고 이로 인한 논란도 사라지게 된다. 사실 노인 세대 상당수가 이용하는 서울-온양온천 운행 전동차의 낮 시간 승차율은 상당히 떨어진다. 이 빈 좌석들을 무임으로 노인세대에게 제공한다고 해서 철도공사의 부담이 대폭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런던의 대중교통을 책임지는 TFL(Transport for London)의 2016년 결산을 보면 운임수익은 46%에 불과하다. 2017년 신년 담화에서 런던시장은 2020년까지 요금 동결을 선언했다. 대신 디젤차량에 독소세(toxicity tax)를 부과해 런던대중교통을 지원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뉴욕의 2017년 예산서 기준에 따르면 뉴욕교통공사는 전체 수입의 40%만이 요금수입이다. 교통목적세 수입이 35%이고 연방정부와 주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이 8%, 자동차 운행자들에게 부과하는 교량과 터널 통행료 수입이 12%에 달한다.

파리교통공사 역시 운임수익은 40%대를 유지한다. 파리와 일드프랑스 광역권 재정의 상당 부분은 교통세가 차지한다. 교통세는 파리 광역권 소재 10인 이상 기업에 부과 된다. 노동자가 많은 기업일수록 도시교통시설의 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투자책임이 기업에 있다는 것이 과세 철학이다.

한국에서 필요한 일은 노인무임승차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교통 운영기관의 지속가능성을 제도로서 구축하는 것이다. 먼저 해야할 일은 자동차에 기울어진 정책을 공공교통으로 바꿔야 한다. 가능하면 자동차 이용을 줄일수 있도록 강력한 억제책을 세워야 한다.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에너지와 환경, 국토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동차에 대해 부과하는 다양한 패널티성 세제가 공공교통운영과 인프라 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에 새 시장이 당선된 후 정규직화됐던 서울교통공사의 업무를 다시 비정규직화하고 외주화를 늘이며 인력도 감축하겠다는 뉴스가 나왔다. 늘어나는 적자를 더 이상 당해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위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공격한다. 공공성에 대한 철학이 없는 곳엔 노동자 권리도, 시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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