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트랜스젠더 올림픽 선수 등장 두고 "공정한가" 논란 커져

강은영 2021. 6.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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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역도선수 로렐 허버드 도쿄올림픽 출전
뉴질랜드 "마나키(존중) 정신으로 허버드 지지"
벨기에 선수 "끔찍한 농담 같아..불공평하다"
성전환(트랜스젠더) 운동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은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로이터 연합뉴스

성전환(트랜스젠더) 운동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나왔다.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43)는 내달 23일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해 여자 선수들과 경쟁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의 출전을 두고 비판 여론도 거세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뉴질랜드 올림픽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트랜스젠더 역도 선수인 허버드가 포함된 5명의 뉴질랜드 역도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허버드는 이 같은 발표에 성명을 내고 "많은 뉴질랜드 국민이 보여준 호의와 지원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남자 선수로 활동할 때 이름은 개빈이었다.

최근 IWF는 허버드의 올림픽 출전권을 인정하는 순위를 공개했다. '도쿄올림픽 랭킹 포인트 순위'에서 허버드는 여자 최중량급(87kg 이상) 7위에 올랐다. 8위까지 자동으로 얻는 출전권을 획득한 것이다.

허버드는 다음 달 23일부터 열리는 도쿄올림픽에서 87kg 이상급에 출전해 여자 선수들과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IOC는 2015년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트랜스젠터 선수가 최소 12개월 동안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리터당 10nmol/L(나노몰) 미만으로 유지되는 경우에 여성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허용했다.


'마나키' 내세워 지지하는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로이터 연합뉴스

뉴질랜드는 허버드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케린 스미스 뉴질랜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허버드 선수는 세계 최고의 대회일 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선수들을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컨센서스 성명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국제역도연맹(IWF) 자격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스포츠에서 성 정체성은 인권과 경기 분야의 공정성 사이의 균형을 요구하는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임을 인정한다"면서도 "뉴질랜드 팀으로서 우리는 '마나키(manaaki·존경)'와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다"고 언급했다.

뉴질랜드 역도팀 선수들도 허버드의 올림픽 출전에 힘을 실었다. 리피 패터슨 뉴질랜드 역도 대표팀 책임자는 허버드가 2018년 선수 생활을 위협하는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해 "끈기와 인내를 보여줬다"면서 "우리는 도쿄를 향한 그녀의 최종 준비 작업을 지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돼"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퀴어 커뮤니티(LGBTQI+) 회원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허버드 선수의 올림픽 출전권에 대해 불공평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낮다 하더라도, 태생이 여성인 선수들과 경쟁하기에는 불공평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남성으로서 사춘기를 겪은 사람들의 뼈, 근육 밀도의 증가와 같은 생물학적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허버드 선수와 같은 체급 경쟁자인 안나 반벨링헨(27) 벨기에 역도 선수는 허버드가 도쿄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소식에 "끔찍한 농담 같다"며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반벨링헨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전적으로 지원하지만 포용의 원칙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선수들은 메달과 올림픽 예선과 같은 인생을 바꿀 기회를 놓치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무력하다"고 호소했다.

또한 뉴질랜드가 역도에서 성적이 부진한 약소국이라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그의 출전을 지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불어 트랜스젠터 선수들을 상대로 여자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반대하는 단체인 '세이브 우먼즈 스포츠 오스트랄라시아(Save Women 's Sport Australasia)'는 허버드 선수의 도쿄올림픽 출전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지난달 허버드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첫 번째 트랜스젠더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올림픽 자격 기준의 공정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 단체는 "43세의 생물학적 이점을 가진 허버드 선수가 여성 대회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IOC의 결함 있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은 스포츠에 참여할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하도록 권장되어야 한다"며 "우리는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열망을 이해하지만, 생물학적인 여성들의 잠재적인 부상과 기회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버드의 과거 수상 논란

지난달 전남 강진군에서 열린 '제80회 문곡 서상천배 역도경기대회'에서 여자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강진군 제공

허버드 선수는 2013년 트랜스젠더가 되기 전까지 남자 역도 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2년 뒤 허버드는 여러 차례 남성 호르몬 수치 검사를 했고, 2016년 12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IOC와 IWF가 제시한 수치 이하로 떨어지자 여자 선수 자격을 얻었다.

2017년부터 뉴질랜드 국가대표로 활동한 허버드 선수는 그해 미국에서 열린 세계 역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세계역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 건 허버드가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2019년 사모아섬에서 열린 태평양 역도선수권대회에서 논란이 커졌다. 허버드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자 대회에 참가한 여자 선수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사모아의 당시 역도대표팀 감독은 "허버드가 뉴질랜드 역도대표팀에 선발돼 도쿄에 가는 것은 다른 (여자)선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는 것과 같다"고 허버드 선수의 올림픽 출전에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허버드 선수가 이번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면 적어도 메달 하나는 목에 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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