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일협정은 美작품..미군감축카드로 朴압박[한국 역사를 바꾼 오늘]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2021. 6. 22.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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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비밀문서로 본 65년 한일협정 체결비사①
NSC 보고서 "한일협정 체결은 최우선 과제"
"한국은 돈 지원 받고도 불안한 의붓아들"
경제 군사적 지원 감축 카드로 한국 압박
일본을 한국 원조국으로 참여시키려 기획
1965년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린든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환담하고 있다. 출처:The Lyndon B Johnson Presidential Library, Austin, Texas.(LBJ도서관)
오늘(6월 22일)은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은 지 56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후유증을 낳고 있는 잘못된 한일협정. 그것을 뒤에서 기획하고 실행한 측은 일본도, 한국도 아닌 미국이었다. 한일 두 나라는 협정에 부담스러워했지만, 미국은 이를 집요하게 밀어붙였던 사실이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미국 기밀문서 원문 PDF 파일은 노컷뉴스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美비밀문서로 본 65년 한일협정 체결비사' 글 싣는 순서
①한일협정은 美작품…미군감축카드로 朴압박
②美 한일협정 회유…韓여론용 차관 미끼 고안
③한일협정은 2:1싸움…日총리 "생큐 미국"
④美 뒷탈많은 한일협정 밀어붙인 이유

한일협정은 1964년 국내에서 뜨거웠던 반대시위(6.3항쟁)가 보여줬듯 대한민국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죄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우리 국민들의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나 영토 문제 등에 대한 언급도 없이 지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일본도 당초에는 협정 체결에 나설 의지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패전국의 책임을 다한 만큼 한국에 따로 과거사를 논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한일협정은 당시로써는 두 나라 모두 피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1965년 6월 22일 두 나라는 합의문에 마침내 서명한다.

CBS노컷뉴스가 미국 뉴저지 버겐(Bergen) 커뮤니티 칼리지 이길주 교수를 통해 확보한 당시 백악관과 국무부의 기밀해제 문서들에는 협정 체결 전후 미국의 생생한 암약상이 수두룩하게 기록돼 있다.

美, 주한미군 감축 카드로 한국정부 압박

64년 7월 29일 맥조지 번디 NSC특보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올린 기밀결재 전문. "신임 주한미국대사에게 5분 간의 격려말씀을 하실 필요가 큽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1) 일본이 한국에 차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한일협상의 조기타결을 굉장히 심각하게 원하고 있다. (2) 원칙적으로 주한미군의 부분 철수를 원한다. 그렇게 한번 철수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면전서 퇴각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브라운 대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협정 타결을 단호하게 밀고 나가라고 촉구하는 구두 메시지를 보내시기를 제안 드립니다." 존슨 대통령은 이를 결재(V표시)한 것으로 돼 있다. 출처:The Lyndon B Johnson Presidential Library, Austin, Texas.(LBJ도서관)
1964년 7월 29일. 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한 장짜리 기밀보고가 올라왔다. 백악관 NSC(국가안보회의) 맥조지 번디 특보의 보고인 이 문서는 주한미국대사로 새로 임명한 윈스롭 브라운 대사를 면담하시라는 제안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해 한국에서 발생한 6.3항쟁 이후 주한미국대사를 교체했다.

보고서엔 존슨 대통령의 면담 말씀 내용이 숫자와 함께 두 가지가 열거됐다. (1)한일협상 조기 타결을 강력히 원한다. (2)주한미군 부분 철수를 희망한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협정을 단호하게 밀고 나가라는 구두 메시지를 전하라는 내용은 별도로 적시됐다.

병렬적으로 나열된 내용이지만, 맥락상 한일협상을 조기 타결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뺄 터이니 국민저항에도 굴하지 말고 한일협정을 관철시키라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64년 7월 31일 로버트 코머(NSC)가 존슨 대통령에게 올린 기밀보고. 주요 내용을 번역하면 이렇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에 66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퍼부었다. 우리의 모든 원조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여전히 불안정한 미국의 의붓자식이다. 일본 점령 기간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잘못된 계획과 소홀 때문이기도 하다."(두 번째 문단)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지연되어 온 한일 간의 합의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일본이 부담을 나누기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타결될 일본의 원조금 6억 달러 외에, 우리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자연스러운 경제적 유대를 재개발하고 싶다. 브라운 대사는 가는 길에 주일미국 대사에게 이런 견해를 말해 주어야 한다."(2항) "개인적으로 한국에 있는 5만 명의 미군 병력을 감축하고 싶다. 우리의 요구는 동남아시아에 더 있다. 한국 방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적은 수의 병력으로 그것을 할 수 없을까? 이 같은 대규모 병력(55만 명)도 가난한 나라 경제의 심각한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감군을 시작하지는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장은 중국 공산당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운 대사는 그것이 언제 실현 가능한지 예의주시해야 한다."(5항). 출처:LBJ도서관
존슨 대통령은 번디 특보의 제안에 따라 이틀 후인 7월 31일 브라운 대사를 면담한다. 면담 직전 이번엔 NSC 참모인 로버트 코머가 존슨 대통령에게 더 긴 기밀보고를 올렸다. 브라운 대사에게 하달할 두 가지 지시사항의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다.

보고서는 먼저 미국 정부가 한일협정 조기 체결을 '최우선(top priority)'으로 두고 있는 이유로 미국 정부의 한국 원조 정책 실패를 꼽았다. 광복 이후 한국에 66억 달러를 퍼부었지만, 성과는 좌절스러웠다, 원조를 이대로 지속할 수는 없다, 이제 일본이 원조의 부담을 나눠지도록 한일 간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한국을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한 미국의 의붓자식(stepchild)"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어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군의 축소 필요성을 언급했다. 주한미군은 줄여서 대신 동남아에 배치해야 한다, 가난한 한국이 대군을 유지하느라 경제발전에 힘을 못 쓰고 있으므로 군대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 감축 문제는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결행 시점에 대해서는 여지를 두고 있다.

朴, 협정체결 약속하며 버리지 말라 간청

65년 3월 16일 체스터 쿠퍼(NSC)가 이동원 외무장관의 존슨 대통령 예방을 앞두고 상관들인 마빈 왓슨 고문, 맥조지 번디 특보에게 올린 비밀메모. 존슨 대통령이 이 장관을 15분간 면담하며 나누게 될 대화 내용을 보고했다. 이 장관과 존슨 대통령의 예상 메시지들 가운데 핵심적인 항목을 옮기면 이렇다. 1)"이 장관은 한국정부가 희망컨대 박정희의 미국 방문 전에 일본과 합의에 이르게 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일본과의 합의가 미국의 한국 지원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확약을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합의에 따라 일본은 한국에 6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할 것이다)." 2)"존슨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군사적, 경제적 원조 확대 정책은 한일협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한다고 밝힐 것이다.(주의: 한국은 현재 경제원조로 세계원조의 9%에 해당하는 1억 8500만 달러를, 군사원조로 세계원조의 14%에 해당하는 1억 4700만 달러를 받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이 숫자에 영원히 매일 순 없다." 출처:LBJ도서관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 이후 한일 정부는 이듬해 1965년 2월 22일 협상에 원칙적인 합의에 이른다. 이어 3월 17일 한국의 이동원 외무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그 경과를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이 장관의 사전 보고 내용은 전날인 3월 16일 체스터 쿠퍼(NSC)가 마빈 왓슨(NSC고문) 및 맥조지 번디(NSC특보)에게 올린 2페이지짜리 비밀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이 장관이 존슨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 3개 항과 반대로 존슨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할 메시지 5개 항을 담고 있다.

먼저 이 장관이 전할 3개 메시지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일본과 합의에 이르겠다는 한국 정부의 결의를 밝히고, 일본과의 합의가 미국의 한국 지원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확약을 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존슨 대통령이 앞서 신임 브라운 주한미국 대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한 미국의 원조 축소와 주한미군 감축 입장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한일협정을 체결할 테니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줄이지 말아 달라는 간청인 셈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존슨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전할 메시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항목을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군사적, 경제적 원조 확대 정책은 한일협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65년 5월 17일 한미정상회담 대화록. 1페이지 두 문단을 옮기면 이렇다. "존슨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에 대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은 군대를 그곳에 계속 주둔시킬 계획이었고, 병력 감축은 고려되지 않았다. 다만 조정이 있다면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다.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이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존슨 대통령은 '한일협상의 행복한 진전을 축하하며 박 대통령이 이번 협상 성공의 주요 요소로 생각한다. 일이 잘 풀린 것은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느꼈다. 그것이 매우 힘들고 민감한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일협정 체결이 베트남에서의 우리의 상호 노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한일협상이 6월 초나 중순쯤 한 달 안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협상을 막으려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의 홍보와 다른 노력들이 합의의 타결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출처:LBJ도서관
이어 그해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해 존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두 정상은 2개월 전 이 장관을 통해 주고받은 상호 간의 약속을 재확인한다.

백악관이 정상 간의 대화를 정리한 3페이지짜리 기밀대화록에 따르면 존슨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에 대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은 군대를 그곳에 계속 주둔시킬 계획이었고, 병력 감축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한일협상이 6월 초나 중순쯤 한 달 안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1페이지)고 다짐해 보이면서 "1967년은 첫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이고 2차 계획도 수립 중이므로 이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 지원이 필요하다"(3페이지)고 호소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 앞에서 확약한 대로 6월 중순에 해당하는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문에 서명한다.

※취재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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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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