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엔 코로나 환자, 이젠 US오픈 챔피언
운명은 욘 람(27·스페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해 보였다. 2주 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3라운드를 6타 차 선두로 끝내자마자 “코로나 확진됐으니 기권하라”는 청천벽력 통보를 받았다. 람은 통산 6번째 우승과 상금 167만4000달러(약 19억원)를 포기한 채 격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동화 같고 영화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람은 21일 제121회 US오픈(총상금 1250만달러)에서 자신의 첫 메이저 우승이자, 스페인 선수 최초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상금은 225만달러(약 25억5400만원). 세계 랭킹 1위를 열 달 만에 되찾았다.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 코스(파71·7676야드)에서 최종 라운드가 시작되자 브라이슨 디섐보(28·미국), 로리 매킬로이(32·북아일랜드), 브룩스 켑카(31·미국) 등 쟁쟁한 스타들이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다. 후반 들어 까다로운 코스를 이기지 못하고 한 명씩 떨어져 나갔다. 4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출발했던 루이 우스트히즌(39·남아공)과 3타 차 공동 6위였던 람이 남았다.
토리파인스는 람에게 특별한 장소다. 여기서 2017년 투어 첫 우승을 거뒀고 아내에게 청혼도 했다. 17번 홀(파4) 7.5m, 18번 홀(파5) 5.5m 버디 퍼트를 연달아 넣어 1타 차 역전에 성공한 람은 챔피언처럼 포효하고 먼저 경기를 끝냈다. 최종 합계 6언더파 278타. 우스트히즌은 이후 보기 1개, 버디 1개에 그쳤다.
2주 전 람의 충격적 기권 이후 골프 팬들은 논쟁을 벌였다. 투어가 적용한 규정도, TV 카메라 앞에서 통보한 방식도 잘못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람은 “투어의 조치를 다 이해한다”고 했다. “갤러리와 악수라도 할까 봐 통보를 서두른 것이다. 코로나에 감염돼 대회를 포기한 선수가 다른 종목에도 많다.”
가족과 단절된 채 집안에서 격리 생활하며 명상을 하고 TV 시트콤도 많이 봤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계속 애썼다”고 했다. “억울해하거나 남 탓하지 않았다. 이미 일어난 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생각했다.” 대선배 파드리그 해링턴(50·아일랜드), 닉 팔도(64·잉글랜드)가 최종 라운드 5타, 6타 차 선두를 달리다 실격당한 아픔을 딛고 얼마 뒤 우승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전화로 들려줬다.
원래 US오픈 개막 이틀 전 격리 해제될 예정이었지만, 24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 음성 판정을 받아 사흘 일찍 해제됐다. “모든 일이 기적처럼 순조롭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증상도 없고 가족 모두 무사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란 믿음이 커졌다.” 최종 라운드 경기를 하며 람은 해링턴과 팔도를 여러 차례 떠올렸다. “한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고 버텼다”고 했다.
람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코스에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 평소 수줍음 많고 사려 깊다는 그는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욕설은 물론 골프채를 패대기치고 사인보드에 주먹질도 했다. 람은 지난달 메이저 PGA챔피언십 3라운드를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마친 뒤 기자들에게 코스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모르겠고 관심 없다. 지금 정말 여기 있고 싶지 않다”고 답해 또 비판받았다.
그날 밤 람은 캐디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지난 4월 태어난 아들 케파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가.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아들이 봐도 정말 괜찮은가. 이후 “심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람은 말했다. “우승하는 데 분노가 도움 된다고 변명해왔다. 하지만 삶은 원래 좌절로 가득하고, 잘 극복하면 좋은 순간들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좌절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경기를 할 수 있다. 실수해도 예전만큼 괴롭지 않다.” 그는 아버지가 된 뒤로 처음 맞은 미국 ‘아버지의 날’에 US오픈 트로피를 들었다. “아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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