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집 오래 산 것도 '죄'가 되는 누더기 부동산 세금

조선일보 2021. 6. 22. 03: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진표(왼쪽 둘째)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부동산특별위원회 공급대책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6.10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이 한 집에 오래 산 1주택자에게 적용해주던 장기보유특별공제율을 낮추는 방안을 확정했다. 현재 1주택자의 경우, 보유 기간 10년, 거주 기간 10년이면 양도 차익의 80%까지 공제받고 나머지 20% 양도 차익에 대해서만 금액별로 6~45%의 양도세를 낸다. 어떤 지역에 살든 10년 이상 보유하고 10년 이상 거주한 1주택자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 실거주자로 보고 혜택을 주는 제도다.

그런데 민주당 개편안에 따르면 양도 차익이 클수록 공제율이 줄어든다. 10년 보유, 10년 거주 요건을 채워도 양도 차익이 5억원 미만일 때만 80%를 공제해주고 5억원을 넘으면 공제율을 70%로 줄인다. 10억~20억원은 60%, 20억원 초과는 50%의 공제율을 적용하는 식이다. 그렇게 되면 비슷한 아파트를 똑같은 가격에 팔더라도 10년 전에 이사 온 사람보다 20년 전 집값이 쌀 때 이사 온 사람의 양도세 부담이 훨씬 더 늘어나게 된다. 양도세 누진제에, 공제율까지 연동하는 것은 양도세의 징벌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다.

거주 목적의 1주택자에게만 적용되는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축소하는 것은 주거 복지 침해나 다름없다. 1주택자의 집 판 돈은 다른 살 집을 사는 데 써야 하는 돈이다. 투기성 이득과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취득세와 양도세 등 부동산 거래세 부담이 높아 지금도 살던 집을 팔면 그 집을 다시 살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주택의 수평 이동을 힘들게 하는 세제다. 그런데 집 투기하지 말고 실거주하라고 해놓고 ‘한 집에 오래 살아 집값 오른 것도 죄’라며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 9억원 초과’에서 ‘상위 2%’로 바꾼 것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세금 낼 자산이 아니라 사람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건 세계 어디에도 없다. 현재 시세를 반영한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아파트가 70.2%, 단독주택이 55.8%다. 이런 상황에서 공시가격 상위 2%로 줄 세우면 아파트 사는 중산층이 그보다 시세가 더 비싼 단독주택에 사는 부유층보다 세금을 더 내게 된다. 부부 공동 명의에 대한 종부세 과세 기준도 아직 못 정했다.

민주당이 보궐선거 참패 후 부동산 세제를 고친 것은 순전히 정치적 이유였다. 민주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종부세 때문에 서울·부산에서 100만표 잃으면 대선 못 이긴다”며 선거가 목적임을 실토했다. 하지만 득표의 유불리만 따지는 부동산 정치의 안경을 쓰고 세제를 허겁지겁 뜯어고치니 양도세도, 보유세도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 누더기 세제가 돼버렸다. 이래저래 국민만 괴롭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