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살려서, 살아서 돌아오라”

조철오 기자 2021. 6. 2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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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발생. 즉각 출동 바람!”

경기도 광주소방서 2층 복도에 걸려있는 글귀. 소설가 김훈이 쓴 산문에서 발췌한 글귀가 붙어 있다. 해당 글귀는 119 구조대와 구조대장실 과 맞닿아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김동식 구조대장은 출퇴근할 때, 화재와 사고 현장으로 출동할 때, 또 구조 작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등 평상시 해당 글을 읽으며 사무실로 향했다고 한다. / 조철오기자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광주소방서 2층 구조대 대기실. 벽걸이 스피커를 통해 화재 발생을 알리는 긴박한 지시가 떨어졌다. 경기도 이천시 쿠팡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실종된 이 소방서 김동식(53) 구조대장이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3시간 남짓 지난 순간이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던 3팀 대원들은 순식간에 비상계단을 지나 1층 차고로 뛰어갔다. 방화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산소호흡기를 등에 멘 채 소방차에 탑승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함재철 3팀장은 “대장을 잃었다는 슬픔은 나중에...지금은 근무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동료 소방관들이 헌화·분향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17일부터 닷새 동안 화재 현장과 주변을 취재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과 달리 소방서에선 자주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굳게 닫힌 구조대장실, 무표정한 얼굴의 대원들이 대기하는 구조대 사무실. 대장은 부재(不在)했지만, 대원들은 슬픔을 느낄 여유가 없어 보였다. 텅 빈 사무실의 적막감이 경건하게 느껴졌다.

지난 20일 경기도 광주소방서 1층 차고지 내부. 이 날은 순직한 김동식 구조대장의 장례가 열린 날이기도 하다. 이날 근무는 구조대 2팀이었다. 구조대 2팀은 긴급출동에 대비해 소방장비를 사전에 차량 인근에 배치해 놨다. 옷을 미리 차량에 걸쳐두는 등 출동 시간을 단축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 조철오기자

대원들은 김 대장의 빈소와 영결식장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짧게 묵념한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고된 진화 작업을 마친 이들은 충분히 쉬어야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화마(火魔)에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장이 이끌던 광주소방서 구조대 3개 팀은 현재 2팀과 3팀이 돌아가며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영결식이 있던 21일 3팀은 김 대장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대신 소방서에 대기하며 출동 명령을 기다렸다. 한 대원은 “대장님도 재난을 대비하는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소방서 2층 김 대장의 구조대장실 앞 복도에는 어른 키 높이의 대형 거울이 있다. 거기엔 소설가 김훈이 쓴 산문에서 발췌한 글귀가 붙어 있었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는 다급하고도 간절하다.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을 바라보면서 나는 늘 인간과 세상에 대해 안도감을 느낀다’고 시작하는 글이다. 글귀는 이렇게 끝났다. ‘달려가는 소방차의 대열을 향해 나는 늘 내 마음의 기도를 전했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생전 김 대장은 출퇴근할 때, 화재와 사고 현장으로 출동할 때, 또 구조 작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 글귀와 마주했을 것이다.

김 대장은 지하 2층 불구덩이 속에서 퇴각하는 대원 4명을 마지막까지 챙겨 내보내고 정작 자신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이라며 후배들에게 작은 것 하나까지 직접 가르쳤던 27년 경력의 무뚝뚝한 고참 소방관이 어제 뜨거운 불길이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그의 안식(安息)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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