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83] 슬픈 ‘보행자 주의’
한 가족이 길을 건넌다. 덥수룩한 머리의 아빠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전력으로 달리고, 어린 딸의 손목을 잡고 뛰는 엄마는 치마를 입고도 어찌나 빠른지 아이의 두 발이 날 듯이 땅에서 떨어졌다. 이는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5번 고속도로의 주의 표지판 그림이다. 1990년, 낙석이나 야생동물 출현주의 표지가 서 있을 자리에 불법 이민자 주의를 알리는 표지판이 섰다. 1980년대 말, 매해 남미인 수십 명이 국경 수비대의 눈을 피해 미국으로 들어오다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민의 나라 미국의 역설적 아이콘이 된 이 표지판은 캘리포니아 교통국 소속 디자이너였던 존 후드(John Hood·1949년생)가 그렸다. 늘 하던 업무 중 하나였지만 작업에 앞서 실제 사망 사고 사진들을 보게 된 후드는 보통 표지판과는 다른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고속으로 지나치는 운전자들에게 한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지로 뛰어들 수 있음을 강렬하게 알려야 했다. 그는 세부 묘사를 모두 지우고 검은 실루엣만 남겼다. 어차피 야간 운전자들에게 보이는 건 실루엣뿐이다. 어리둥절한 채 엄마 손에 딸려가는 꼬마의 뒤통수에서 천진하게 팔랑대는 양갈래 머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존 후드는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이다. 뉴멕시코주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나고 자란 그는 베트남전에 보병으로 참전,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다. 낯선 이들이 나의 영토로 들어오는 일, 그리고 살기 위해 죽도록 달리는 일가족이란 그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 이민자들에게 ‘우리 땅에서 나가라’고 외치는 미국인들에게 후드는 여기가 누구 땅인지를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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