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파리의 별이 된다는 건
파리의 지인들로부터 갑자기 많은 연락이 쏟아진다. 워낙 발레를 좋아하는 게 소문이 나서인지, 파리 오페라 발레단(POB)의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한국인 발레리나 박세은이 350년 전통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별·수석무용수)이 됐다는 것이다. 사실 10년 전 이 발레단에 준단원으로 입단한 이래, 그녀가 보여준 끝없는 노력과 무대를 사로잡는 예술적 기량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소식도 아니다.
소식을 전하던 한 프랑스 친구는 더욱 호들갑이었다. “정말 너희 한국 사람들은 대단해. 조수미에 조성진까지 세계의 콩쿠르라는 콩쿠르는 한국 음악가가 휩쓸었잖아. 게다가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에 이어 이제는 박세은까지…. 가장 유럽적인 예술 분야에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나 두각을 나타내는 거지?”
발레의 종주국은 프랑스다. 여전히 발레 용어 대부분이 프랑스어일 정도로 발레에 대한 자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불가능이라 불리던 벽을 깬 ‘사건’을 두고 그 친구에게 어떤 답을 보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흔히 한국인 예술가를 칭찬할 때 자주 동원되는 ‘열정’이라든가 ‘한(恨)’ ‘혼(Soul)’ 같은 여러 단어가 떠올랐다. 고민 끝에, 지난 1983년 이탈리아에 유학 온 조수미가 허름한 로마의 아파트에서 손으로 쓰면서 자신에게 맹세했다는 5가지 약속을 그 대답으로 보냈다.
①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말 것. ②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예술가로서)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③어학과 노래에 치중할 것. ④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할 만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⑤말과 사람들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
발레는 인간의 육체로 표현하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이다. 또 현실과 괴리된 그 탐미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감동을 주는 예술이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는 동양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발레단이라는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이 된 박세은의 영광만을 본다. 하지만, 아름다운 백조를 춤추는 오늘의 박세은이 있는 건 그녀 또한 조수미와 같은 각오를 수없이 다짐하며, 끊임없는 물 아래의 발장구를 해왔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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