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의공감산책] 성적 농담이 키워온 폭력
인간사회서 보편적 압력 존재
개인의 수치·고통 덮고 가자는
구태의연한 생각이 조직 파괴
성희롱, 성추행 등 성 관련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공군 여성 부사관이 상관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두고 추가적인 성추행, 회유, 그리고 은폐 시도와 관련된 의혹이 커지고 있다. 공군 군사경찰의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 정황도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유머 혹은 농담은 ‘그저 농담’으로 치부될 때가 많다. 농담을 그저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우둔하거나 흥을 깨는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질 나쁜 농담에도 웃어주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 때로는 유머가 포함된 의사소통에는 편견과 다른 집단을 상대로 한 우월감 표현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다른 집단이나 또는 그 구성원을 깎아내리려 유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 유머를 이용하여 자신을 둘러싼 논란 등을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편견을 표현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은유적으로 둘러서 깎아내리는 것이다.
또한 유머는 다른 집단에 대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감을 재차 확인하려는 의도를 애매모호하게 감추는 데에도 사용된다. 구성원들의 유대감이 생겨나게 되고 결국 조직의 응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는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오랫동안 권력을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강한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들은 그 권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이러한 욕구가 다양한 공격적 언어와 행위로 이어지고 성적 공격성도 그중 하나가 될 위험성이 높다.
사회지배이론에 따르면, 인간사회는 보편적으로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몇 집단은 우위를 점하여 사회적 가치를 분배하는 특권을 누리는 반면 다른 집단은 그 아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회지배성향’이 나타난다. 사회지배성향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 비해 집단 간 계층의 존재를 지지하고 불평등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또한 특정 집단의 우월성을 인정하면서 지배층 하부구조에 속한 사람은 약하고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합리화를 쉽게 만들게 된다. 그렇기에 이를 표현하기 위해 낮은 집단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농담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받아주고 같이 웃어주는 전례가 생기게 되면 그 농담은 인정된 것이라는 생각에 이후 거침없이 나오게 된다. 이런 성적 농담이 그 집단에서는 용인되는 일종의 집단 규준이 되고, 이에 반박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해지고 이탈자 혹은 반항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행동의 적절성에 대한 초기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아서 기분 나빠도 참고 수용하는 것이 이런 농담이 점차 선을 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작은 농담을 허용하는 것이 이후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웃어주고, 대충 따라주는 것이 미덕이고 뭔가 트인 사람, 포용력 있는 사람이라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기준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법적 잣대로 볼 때 이는 성희롱, 성추행과 다르지 않다. 조직의 인화를 위해 개인의 고통과 수치를 덮고 가자는 구태의연한 생각 자체가 오히려 그 조직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모이기만 하면 성적 농담을 늘어놓고 그걸 견디어야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조직 내 성범죄를 막을 수 있다. 개개인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선 넘은 성적 농담에 대한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본인의 언사가 유머인지, 아니면 농담을 빙자한 상대에 대한 모욕인지를 가늠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런 질 낮은 농담에서 벗어나 좀 더 진정한 유머를 즐길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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