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윤석모 삼성증권 ESG연구소 소장 | "포스코·현대차 등 40개 기업 ESG 평가해 발표할 것"
올해 1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투자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내는 2021년 연례 서한에서 “2050년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사업 계획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제 사회는 2015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기로 했다. 블랙록은 미국 S&P500 기업에 평균 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지난해 말 기준 운용 자산은 8조6800억달러(약 9600조원)에 달한다.
블랙록뿐 아니라 국민연금 등 글로벌 주요 투자자들은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ESG 경영을 하지 않는 곳에는 투자하지 않거나 아예 투자한 자금을 뺄 수도 있다는 경고음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선 국민연금이나 블랙록처럼 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들의 ESG 현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비교 분석한 자료를 찾아보기 힘들다. 주요 상장 기업을 분석하는 증권 회사들이 동종 기업 간 ESG 경영 수준을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7월부터는 이런 비교가 가능해진다. 삼성증권은 국내 유가증권 시장 상위 40개 기업에 대해 글로벌 동종 기업과 견줘 어느 정도 ESG 경영을 하고 있는지를 지수로 제시할 계획이다. 테슬라보다 현대차가 얼마나 더 온실가스(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지 등 구체적인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삼성증권 ESG연구소의 목표다.
조선비즈는 국내 증권 회사 최초로 ESG연구소를 설립한 삼성증권의 윤석모 ESG연구소장을 만나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인터뷰는 6월 3일 서울 서초동 삼성증권 본사에서 진행했다. 윤 소장은 “폴크스바겐이나 BMW, 현대차, 테슬라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매출 1원당 어느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지를 상대평가해서 수치로 제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투자자와 회사 최고경영자들이 ESG 경영의 벤치마크로 삼을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윤 소장과 일문일답.
ESG연구소를 설립한 계기는.
“작년 초부터 ESG가 화두가 됐고 이걸 전담하는 조직을 갖춰야겠다는 공감대가 삼성증권 내에 형성됐다. 보통 내부에서 기존 인력을 전환해서 조직을 꾸리지만 ESG는 너무 많은 이슈가 있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 내부 인력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기로 했다. 현재는 5명의 전문가와 내가 연구소를 운영하며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내 나머지 9개 분야별 연구팀과 협업하고 10여 개의 ESG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SK, LG, 포스코 등에 ESG 관련 컨설팅을 제공한다.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대기업은 대부분 ESG위원회 등 조직과 인력을 갖췄다. 그런데 조직을 이용해 막상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고 이 부분을 제일 궁금해한다.”
그럼 기업은 ESG와 관련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우선 국제 사회와 국내의 규제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탄소배출권(기업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권)과 관련해서 유상 할당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만약 수출 기업이면 유럽 등에서 탄소 국경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런 규제가 변하면 그 규제를 어떻게 준수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두 번째는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ESG 친화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면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원료를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도 있다. ESG가 중시하는 환경을 역으로 이용해 새로운 신규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ESG 관련해 기업의 평판이 훼손되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ESG 규제 강화가 비즈니스의 기회가 되기도 하나.
“그렇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에너지 기업인 오스테드(Ørsted)는 해상풍력과 관련된 독자적인 기술과 오랜 사업 경험이 있다. 해상풍력은 안 해본 기업은 쉽게 도전하기 힘든 분야인데 오스테드가 기술력을 선점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ESG 규제가 강화되면서 오스테드가 세계 곳곳에서 해상풍력 설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들의 ESG 투자는 어떤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채권이나 상장지수펀드(ETF)에 친ESG 기업에 기계적으로 투자하는 패시브 자금이 몰리고 있다. 캐나다 연기금 운용 회사(CPP Investment Board)를 보면 재생에너지 기업에 대출이나 지분을 투자한 자금이 2016년 상반기까지는 거의 없었지만 지난해 상반기에는 60억달러(약 6조6700억원)에 달했다. 유럽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후 경제 회복을 위해 유럽연합(EU) 회원국이 7500억유로(약 1000조원) 규모의 리커버리 펀드를 결성하는 데 합의했고 각국 의회 승인을 거쳐 올해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펀드 자금이 투자된다. 그런데 이 중 20~30%가량이 친환경 기업 등 ESG 관련 투자로 집행되도록 이미 결정됐다. 미국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증세해서라도 친환경 정책을 내놓고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인데 이런 막대한 자금이 글로벌 ESG 투자의 시드머니(종잣돈)가 될 것이다.”
삼성증권은 MSCI와 ESG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
“7월부터 상위 40개 기업(종목)에 대해 ESG 데이터를 기업 분석 보고서에 포함해 발표할 계획이다. 기업 분석 보고서에 재무제표가 들어는 것처럼 ESG 관련 표를 제공한다. 각 회사의 기업 분석 보고서에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한 ESG 현황과 이와 관련된 주요 지표들을 담을 것이다.”
그런 표가 기업에 어떤 의미가 있나.
“경영진은 ESG와 관련된 절대 수치보다 벤치마크가 될 상대 지표가 필요하다. 앞으로 투자자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본다고 하는데 우리 기업이 다른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 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어느 수준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지, 이를 어느 정도 시점까지 달성할지 등 목표치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폴크스바겐이나 BMW, 현대차, 테슬라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매출 1원당 어느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지를 상대평가해서 수치로 제시하면 기업은 이를 보고 ESG 경영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배출량, 업계에서 가장 배출량이 적은 기업의 배출량 등을 알고 자사의 배출량을 확인하면, ESG와 관련해 투자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쉽다. 또, 최고경영자가 ESG 경영의 벤치마크로 삼을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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