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화·차별화로 승부거는 팬덤 경제] 2PM과 문자메시지 주고받고 AI 스피커로 대화하고
“현진아 뭐하니?”
불 켜진 휴대전화 화면만큼 밝은 미소가 기자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렇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린 게 얼마 만인가. 서둘러 휴대전화 잠금을 풀고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 발신인은 아이돌그룹 2PM의 준호다. “일하고 있어. 너는?” 설레는 마음으로 답장을 보낸 지 1분도 안 돼 준호의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난 어마어마한 거 하는 중. 늘 고마워.”
2PM 준호와 즐거운 대화는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디어유 버블(DearU bubble)’을 통해 이뤄졌다. 준호의 메시지는 준호의 버블 계정을 구독하는 이용자 모두에게 발송된다. ‘다대일 채팅’이지만, 준호와 단둘이 대화하는 것처럼 꾸며진 채팅창에서 “뭐해?” “비 온다” 같은 소소한 내용의 메시지를 받다보면 마치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때때로 수신되는 준호의 방금 찍은 ‘셀카’나 동영상은 덤이다.
지난해 2월 서비스를 시작한 디어유 버블은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디어유가 출시한 서비스다. JYP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등 15개의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총 164명의 연예인과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달에 4500원만 내면 연예인이 직접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어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 가입자는 100만 명 이상이며, 이 중 글로벌 이용자가 72%에 달한다. 디어유 버블을 서비스하는 ‘디어유’의 2020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600% 이상 증가한 13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매출액의 절반 이상(89억원)을 벌어들였다. 1분기에 3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설립 4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디어유는 하반기 코스닥 상장(IPO)을 준비 중이다.
청소년의 하위문화로 여겨졌던 ‘팬덤(fandom·연예·스포츠계 팬 집단)’이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가 커지면서, 강력한 팬덤을 가진 연예인의 목소리, 캐릭터, 공연 등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의 팬덤 경제는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데 그치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코노미조선’은 떠오르는 새로운 팬덤 비즈니스 트렌드를 세 가지 포인트로 분석했다.
포인트 1│‘나만을 위한’ 스타
팬덤 경제에 개인화·차별화가 시도되는 건 디어유 버블만이 아니다. 엔씨소프트가 올해 2월 출시한 케이팝(K-pop)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의 핵심 콘텐츠 ‘프라이빗 메시지’ ‘프라이빗 콜’ 서비스도 대표적이다. 프라이빗 콜은 메시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연예인과 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만 실제 연예인이 아닌, 연예인의 목소리로 녹음된 AI와 통화하게 된다. 이용자가 원하는 통화 시간, 연예인의 말투, 대화 주제를 설정하면 예약된 시간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형식이다.
엔터테인먼트 테크 플랫폼 ‘스타리(STARI)’도 멀게만 느껴지는 연예인과 거리를 좁히고 교감하고자 하는 팬심을 반영한 비즈니스 사례다. 팬이 연예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를 신청하고 금액을 지불하면 연예인의 답신을 영상편지 파일로 제작해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접 이름을 불러주고 따뜻한 말을 전하는 연예인의 영상을 받아 본 팬들은 무대 위 화려한 연예인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팬들은 스타와 팬 중 한 명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인간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일종의 ‘판타지’가 있다”면서 “IT 기술의 발달은 이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팬덤의 충성도가 강해지며 더 큰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포인트 2│‘항상 함께하는’ 스타
노래하는 엑소(EXO)의 목소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날씨를 알려주고 책을 읽어줄 때 엑소의 목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일상 구석구석에서 연예인과 함께하고 싶은 팬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서비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SK텔레콤과 손잡고 출시한 ‘누구셀럽(NUGU celeb)’ 스마트 스피커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서비스 음성 안내를 엑소 백현, 레드벨벳 조이, NCT 태용 등 세 명의 케이팝 스타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인터넷상에는 ‘사랑해’라는 이용자의 말에 연예인의 목소리로 대답해주는 AI 스피커에 대한 생생한 후기가 이어진다. 지난 5월 BTS 등이 소속된 하이브의 자회사 ‘하이브 에듀’는 BTS 음성을 학습한 AI가 사용자의 이름과 응원 메시지를 들려주는 오디오 개인화 서비스 기술을 선보였다. BTS의 합성 음원은 하이브 에듀의 한국어 학습 교재와 함께 제공된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셀럽 오디오북’이라는 코너를 마련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이돌그룹 몬스타엑스의 셔누, EXID의 하니 등이 각각 낭독한 책 한 권의 오디오 파일을 서비스한다. 하니가 낭독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은 17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같은 삐삐 시리즈지만 전문 성우가 낭독한 동화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의 조회 수인 약 2만4000회보다 일곱 배 이상 많다.
포인트 3│‘내가 만들어가는’ 스타
항상 품절 상태인 굿즈(연예인 관련 상품)들, 매일 열어도 부족한 콘서트 등 팬들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팬덤 간 수요·공급 격차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스타트업들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이유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케이팝 스타의 팬덤을 중개하는 플랫폼 ‘메이크스타’는 설립 5년 만에 전 세계 230개국에서 13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모집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형 기획사들이 팬들의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굿즈나 팬미팅을 기획할 수 있도록 자금 조달부터 이벤트 제작·배송까지 협업·대행해준다. 기획사는 팬들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더 많은 수익 활동을 진행할 수 있어서 좋고, 팬들은 좋아하는 스타의 콘텐츠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최근엔 아이돌그룹 보이프렌드 출신 솔로가수 정민의 미니앨범 제작 프로젝트가 개시 2주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하면서 앨범 제작이 성사됐다. 메이크스타는 올해 2월 산업은행,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6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금은 116억원에 달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공연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꿈을 이뤄주는 스타트업도 있다. 마이뮤직테이스트(MMT)다. MMT는 빅데이터 기반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공연을 기획함으로써 기획사 중심이었던 공연 시장을 소비자(팬덤) 중심으로 바꿔놨다. 주요 고객은 좋아하는 케이팝 스타를 자국에서 보고 싶은 해외 팬들이다. 몬스타엑스, 세븐틴 등 아이돌그룹들의 공연이 MMT를 통해 동남아,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 공연이 어려웠던 지난해에는 아이돌그룹 러블리즈 등의 온라인 콘서트를 생중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회사의 결정만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 스타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소비하려는 팬들의 마음을 읽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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