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더 받자고.." 파주 DMZ 하천부지도 불법매립 뒤 '나몰라라'

박경만 2021. 6. 21.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임진강 주변 불법매립 극성
파주 DMZ일원 논 이어 하천부지까지 불법매립 몸살
야생생물 서식지 훼손·홍수 위험
흙탕물 강 유입돼 어민들 큰 피해
파주시 원상복구 통보에도 '나몰라라'
주민들 "특사경이 발본색원" 주장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초평도 앞 임진강변 논이 지난달 초 5m가량 높이로 불법매립되고 있다. 독자 제공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일원 접경지역의 논 습지가 불법매립 탓에 몸살을 겪고 있는 가운데(“땅값 30% 오르기도”…불법매립에 접경지 논이 사라진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민통선) 안 하천부지까지 불법매립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파주시가 즉각 원상복구하라고 통보했지만 한달 넘도록 진척이 없는 상태다. 주민들은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이 나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9일 임진각에서 바라본 민통선 안 자유의 다리(독개다리) 인근 하천부지에는 임진강변을 따라 수백 미터 길이의 붉은 흙이 수북하게 매립돼 있었다.

문산읍 주민들의 제보에 따르면, 민통선 안 국유지인 이 하천부지는 지난달 말~이달 초 파주시로부터 하천 점용허가를 받아 농사를 짓는 마정리 주민이 장비업자와 짜고 덤프트럭과 포클레인 수십대를 동원해 불법으로 흙을 쌓아올렸다. 이 사실을 안 파주시는 마정리 주민에게 한달 안에 원상복구하라고 통보했다. 이어 군부대 협조를 받아 덤프트럭의 하천부지 진입을 막는 등 뒷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복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파주시 관계자는 “하천부지 매립은 경작 농민이 지난해 폭우 때 훼손된 곳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줄이려 높게 성토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불법 매립된 논과 하천부지에 대해서는 원상복구를 통보하고 추가 반입되지 않도록 매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을 안내한 노현기 ‘임진강~디엠제트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임진강 하천부지는 홍수예방터 구실을 하는 범람원이어서 메우거나 지대를 높이면 문산의 주변 마을들이 홍수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특히 임진강 하천부지는 주변 논 습지와 함께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로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어 매립하면 재두루미, 수원청개구리, 뜸부기, 저어새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환경이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마정리 외에도 불법 매립해 파주시로부터 원상복구 통보를 받은 문산읍 장산리, 사목리 등 논들도 19일 현재 원상복구를 마쳤거나 복구에 나선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오히려 5~6m 이상 높이로 흙을 쌓아올려 민원이 빗발친 장산리 독수리전망대 인근의 대규모 매립지는 복구는커녕, 누군가 성토한 땅에 나무나 작물을 심으려고 고랑을 파놓기까지 했다. 임진강에 인접한 사목2리 마을 앞 수천㎡ 규모 논도 지난 4월 3m가량 높이로 매립된 뒤 건설폐기물 등이 드러난 채 방치돼 있었다.

디엠제트 일원 논의 불법매립이 급증한 이유는 서울·경기 개발지역 공사장에서 발생한 흙이나 건설폐기물을 저렴하게 처리하려는 업자와 땅값을 높이려는 외지인 소유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목리 한 주민은 “부동산업자가 서울의 땅 소유주에게 매립하면 땅값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부추겨 장비업자를 동원해 길 높이로 매립한 것으로 안다”며 “안에 폐건설자재 등이 매립돼 흙을 덮어도 물이 안 빠져 농사를 못 짓고 토양과 수질 오염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문산읍에 여러차례 민원을 냈는데도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마구잡이 매립 탓에 발생하는 흙탕물도 문제다. 민통선 안에 있는 초평도 앞 동파리 임진강변 논 불법매립으로 흙탕물이 강 하류까지 흘러넘쳐 어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경구 파주어촌계장은 “동파리 임진강변 논이 지난달 초 5m가량 높이로 매립된 뒤 비가 오면 하천에 흙탕물이 흘러 어망이 흙에 묻히거나 막히고 어획량이 감소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 지금도 덤프트럭들이 흙을 싣고 전진교 쪽으로 계속 들어가는데 시청에 민원을 내도 매립한 당사자와 해결하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동파리~통일대교 구간에서 고기를 잡는 김재천 파주어촌계 3선단장도 “황복, 숭어, 실뱀장어를 잡을 시기에 시뻘건 토사와 오염물질이 흘러내려 큰 피해를 입었다”며 “시와 토지주에게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경기도가 직접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마정리 주민 윤아무개씨는 “신고를 해도 시와 경찰이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시청 내부에서도 부서 간 미루기를 해 주민들이 제풀에 지쳐 건설폐기물이나 쓰레기를 묻어도 위에 흙만 덮어놓으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재발을 막으려면 경기도 특사경이 시추공 조사를 통해 불법 매립한 성분을 밝히고 원상복구하도록 강력하게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지난달 초 민통선 지역인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초평도 앞 임진강변 논 매립공사로 흙탕물이 강에 유입되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4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자유의다리(독개다리) 인근 임진강변 하천부지 수천㎡가 불법 매립되고 있다. 독자 제공
지난 3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주변에 덤프트럭 10여대가 흙을 가득 실은 채 정차해 있다. 독자 제공
경기도 파주시로부터 원상복구 통보를 받은 문산읍 장산리 대규모 불법매립지에 지난 19일 누군가 나무나 작물을 심기 위해 밭고랑을 파놓았다. 박경만 기자
지난 19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2리 마을 입구의 불법 매립된 논에 건설폐기물 등이 노출돼 있다. 박경만 기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