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가는 건 생각일 뿐..세상은 언제나 새롭죠"

허연 2021. 6. 21. 17: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교계 문필가 원철스님..문화기행서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관하여' 출간
한중일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
60여 곳 5년간 답사하고 고증
100여 명 따뜻한 이야기 담아
"한국사회 너무 많은 걸 구분해
나와 남, 위 아래 벗어나야 희망"
[사진 제공 = 불광미디어]
"요즘 본캐(본캐릭터)니 부캐(부캐릭터)니 하는 말이 유행입니다. 이걸 보면서 불교 교리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삶 자체가 본캐와 부캐를 넘나드는 거잖아요. 집에서는 아버지 역할이 본캐지만 직장에 가면 직장인이 본캐죠. 상황에 따라 입장이 변하는 것이 세상사예요. 이것은 역지사지 원리하고도 통해요."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문필가인 원철스님(60·불교사회연구소장)이 자신의 열 번째 책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관하여'(불광출판사 펴냄)를 냈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통의동 백송(白松)이야기를 꺼낸다. "통의동에 가면 백송이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 백송이 고사되어 밑둥만 남게 됐죠. 현상만 보면 백송은 낡아서 사라진 거예요.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나서서 주변에 자손나무들을 심었어요. 다시 새로워지는 거죠. 백송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전해지면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요. 그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속에서 백송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거죠."

불교사회연구소를 맡고 있는 스님은 고민이 많다. 불교와 사회 접점에 있는 연구소다 보니 난처할 때도 많고 답이 없는 질문에 시달릴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스님이 생각하는 건 '균형감'이다. "한국사회는 너무 '구분'에 익숙해요. 너와 나, 상하, 동서 모든 걸 구분해요. 갈등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요. 구분하지 말고 동시에 보는 게 중요합니다. 나를 보면서 남을 보고, 위를 보면서도 동시에 아래를 보는 자세가 필요하죠.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건 남이 있기 때문이에요. 위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래가 있기 때문이죠."

법전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우리 시대 선지식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경험을 누렸다. 법전스님을 비롯해 성철스님, 일타스님, 혜암스님이 그들이다. 자신의 표상이 된 스님들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스님들이 모여 몰래 라면을 끓여먹다가 성철스님에게 들킨 일이 있었어요. 절에서 쫓겨나거나 엄청난 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스님이 뜻밖에 '그래 많이 묵으라'며 웃으시는 거예요. 그 파격에 너무 놀랐죠. 지금 생각해 보니 스님은 이미 벌을 줬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하긴 겁을 먹고, 고개를 처박고, 숨고 도망치고 하는 것으로 벌은 다 받은 거죠. 그만큼 대인이셨죠."

스님의 이번 책은 5년간의 답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60여 개 장소와 100여 명 이야기를 담아낸 역사문화 기행서다. 스님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 국가들을 돌아보며 사색을 길어올렸다. 그 여정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갈무리하고, 고증을 위해 온갖 문헌을 섭렵했다. "낡아가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세상과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는 것이 책의 메시지다.

책에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도 나온다. "안도 다다오를 좋아합니다. 그의 건축은 선불교적이죠. 노출 콘크리트 기법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건축에는 꼭 있어야 할 것만 있어요. 그리고 역발상의 매력이 있어요. 고베에 가면 혼푸쿠지(本福寺)라는 절이 있는데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이 지하에 있어요. 보통 법당은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는데 놀랍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몸을 낮추고 밑으로 내려가게 만든 거예요."

대구에서 자란 스님은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경전이 좋아 불교에 입문했고, 오랜 시간 불가에 귀의한 스님들을 교육하는 일을 해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일기를 썼어요. 그게 글쓰는 습관이 생기는 데 큰 역할을 했죠. 학교를 졸업하고 한문공부하다가 경전의 세계에 빠졌죠."

스님은 탈종교 사회를 걱정한다.

"내 종교가 세상을 이끈다는 오만 같은 건 이제 버려야 해요. 과학과 모순되지 않으면서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해요. 불교는 세상 사람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을 다스리는 건 돈이나 기술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아함경 한 구절을 들려줬다. "이것이 있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에 저것이 멸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