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스웨트', 美러스트벨트 몰락 통해 노동·땀의 의미를 묻다

이향휘 2021. 6. 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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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러스트벨트 철강 노동자의 애환을 그린 연극 `스웨트` 무대. [사진 제공 = 국립극단]
힘겨운 노동으로 흘리는 구슬땀의 가치가 갈수록 평가절하되는 시대에 땀의 의미를 묻는 묵직한 작품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왜 러스트벨트 제조업에 종사하는 백인들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지며 압도적 지지를 보냈는지 그 집단 심리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국립극단이 지난 18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은 흑인 여성 작가 린 노티지에게 2017년 퓰리처상을 안긴 극본을 바탕으로 한다. 아버지 세대에 안정적인 삶과 풍요를 안겨줬던 '땀'이 지금 세대엔 오히려 절망과 슬픔의 의미로 다가온다.

극 배경은 200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산업 도시 레딩. 고등학교 졸업 후 같은 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중년 여성 셋(신시아·트레이시·제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친구 셋은 퇴근 후 저녁이면 동네 바에 들러 술잔을 기울인다. 이곳엔 산업재해로 다리를 절뚝거리는 바텐더 스탠(박상원)이 일하고 있다. 늘 함께 파티를 열곤 했던 이들은 신시아가 관리직으로 승진하면서 여전히 현장 라인에 있는 친구들과 균열이 생긴다. 그러다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려 하고, 이에 맞서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서 갈등은 극에 달한다. 특히 중단된 생산 라인에는 남미 출신 노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는 애꿎은 이민자에게 향한다. 비용 절감에 목숨을 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는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왜 중남미 이민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멕시코에 장벽을 세우려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극에서 보여주는 러스트벨트 몰락은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나라 역시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고 있으며 소수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막아야 할까, 아니면 미국 백인 우월주의자처럼 이민자들에게 혐오 프레임을 씌워야 할까.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극중 한 인물은 이렇게 한탄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열심히 일했는데."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한탄일 수도, 부속품처럼 늘 대체 가능한 노동자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안경모 연출에 박상원, 강명주, 송인성 배우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7월 18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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