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스타항공 채권단 '내 돈 내놔'..새주인 찾자마자 갈등 예고
1800억 회생·상거래 채권단 갈등 예고
항공기 리스사 "돈 갚아야 비행기 대여"
리스사와 따로 협상 전개 가능성 유력
'차별하지마라' 채권단 연쇄 갈등 우려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이스타항공 새주인 윤곽이 드러나자마자 ‘가시밭길’이 펼쳐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갚아야 할 돈이 매각금액을 훌쩍 웃도는 상황에서 수백억대 회생채권을 보유한 외국계 항공기 리스사 등을 중심으로 갈등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고통분담’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국내 채권자들과 달리 외국 항공기 리스사들은 ‘변제 없이 비행기 대여도 없다’는 입장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자칫 경영 정상화의 첫걸음인 비행기 확보부터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성정은 최근 이스타항공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는 공문을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하며 사실상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됐다. 매각 금액은 11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성정은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이스타항공 정밀실사를 진행한 뒤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후 부채 상환과 유상증자 계획 등을 담은 회생계획안을 내달 20일까지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스타항공 새 주인을 찾았지만 험난한 과정은 지금부터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인수 이후 갚아야 하는 부채를 두고 채권자들과의 괴리를 좁혀야 하기 때문이다.
성정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해 치르는 금액은 공익채권 그룹(직원들 임금과 퇴직금)에 우선 변제한 뒤 남은 금액을 회생·상거래 채권자에 배분하게 된다. 우선 임직원 퇴직금 등 공익채권에 쓰일 금액만 약 700억원 규모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회생 계획안 제출을 위해서는 채권자 상환 방식을 결정한 뒤 채권자들에게 ‘채권금액 일부만 변제받는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스타항공 회생·상거래 채권단인 외국계 항공 리스사와 정유사, 카드사, 여행사 등을 포함해 총 1800억원이 넘는다. 매각 금액에서 공익채권 변제(700억원)를 제한 규모가 400억원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갈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아직 최종 채권 규모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회생법원이 이스타항공 채권자 명단을 확정하고 채권 내역을 신고하라고 통지하는 과정에서 채무 관계를 두고 이스타항공과 일부 채권자 측 입장이 엇갈리며 현재 계류 중인 케이스도 있다. 추가 채권자가 나타날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금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스타항공 측은 일부 변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청산 수순으로 가기 때문에 결국 받아갈 돈이 없을 것이란 점을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항공업계 재건이라는 ‘대의명분’ 내지는 ‘고통분담’을 위해 채권자 일부는 채무 탕감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이스타항공 측은 “부채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법원 판단하에 (채권 규모가) 줄어들 여지도 있다”며 “매각가를 더 이끌어내기 위해 스토킹호스 방식까지 쓴 상황에서 원활한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계 기반 항공기 리스사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실제로 일부 항공기 리스사들은 최종 인수 후보와 금액 규모가 구체화하자 변제 규모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회사는 ‘기도 안찬다’는 반응까지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재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여파로 항공기 리스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에서 외국계 항공기 리스사들은 (채무탕감을)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다”며 “설령 채권단 동의를 구하더라도 사업 재개 이후 비행기 리스 환경이 어려워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2019년까지만 해도 복수의 외국계 리스사와 23대의 항공기 리스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몰아친 이듬해 3월부터 모든 항공기 운항이 멈추며 항공운항증명(AOC) 효력이 정지되자 항공기 리스사들은 원상회복 비용까지 포기한 채 비행기를 차례로 회수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항공기 리스사들이 받지 못한 채무금액만 약 7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비행기를 띄워 수익을 내야 하는 항공사가 리스사 돈을 갚지 못해 비행기를 못 빌릴 수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공기 리스사를 중심으로 협상을 따로 진행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문제는 항공기 리스사를 대상으로 협상을 따로 진행하면 또 다른 회생·상거래 채권 그룹인 정유사와 카드사, 여행사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 중간에서 실타래가 잘못 풀리면 차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채권단과의 협상을 위해 적잖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이유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점치는 오는 10월 AOC 재발급에 이은 운항 재개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회사 인력도, 시스템도 모두 멈춰 있는 상태인데 석달 뒤 운항을 재개하기 여려울 것”이라며 “비행기 리스 문제나 임직원 재고용, 추가 투자 등의 여러 문제를 보면 연내 재개도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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