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도 투자한 소형 원전 SMR..'탄소중립 대안' vs '실체 없는 사기' [이코노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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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15일 대전 유성구 북대전나들목 바로 앞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문 옆 ‘E=mc²’이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공식이 맨 처음 눈길을 잡았다.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게 하는 130만㎡ 부지 안으로 들어서자 60여 동의 건물이 즐비했다. 2,300여 명이 상주하는 국내 유일 원자력 종합 연구기관인 이곳은 1959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기술 연구소이기도 하다.
원자력의 가능성에 관심이 많았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원자력원을 세우고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도 만들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80년대 전두환 대통령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의식해 관련 연구와 인력을 키우며 이곳은 한국 원자력 역사와 기술의 심장부가 됐다. 지난달 북한 정찰총국 산하 조직 ‘김수키’(Kimsuky)의 소행으로 보이는 해킹 시도가 이뤄진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미정상회담 후 각광 '소형 원전'
연구원 서편 안쪽으로 쭉 들어가자 이름도 없는 ‘C28’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45m 높이의 이곳이 최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빌 게이츠-워런 버핏 투자로 주목받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ㆍSmall Modular Reactor)를 개발하고 관련 시험을 하는 장소다.
출력 300㎿ 이하 SMR 연구는 우리나라도 일찍 시작했다. 이미 2012년 중소형일체형원자로 ‘스마트’(SMART)를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설계 인증까지 받았다. SMART 원자로 용기의 크기는 직경 4m 높이 20m 안팎이다. 박현식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계통안전연구부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실제 건설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도 시험장에선 SMART 시제품이 아니라 원자로 용기가 없는 변형된 형태를 토대로 한 테스트만 진행 중이었다.
SMR가 각광받는 건 대형 원전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탄소중립 대안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든 뒤 이러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원전 부지에는 대형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이 따로따로 건설된 뒤 각종 배관으로 연결돼 있었다. SMR는 이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주요 기기가 하나의 용기 안에 일체형으로 들어간다. 거대 콘크리트 돔인 격납 건물도 필요 없다.
"안전사고 10억 년에 한 번"
더구나 원자로를 아예 지하의 거대한 수조 안에 넣어 운영할 수도 있어 안전사고를 원천 차단한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현재 100만 년에 한 번꼴인 원전 노심 손상 중대사고를 10억 년에 한 번 꼴로 줄여, 사실상 사고를 없애는 게 SMR의 목표”라고 말했다.
만일 사고가 나도 영향을 받는 비상 구역이 반경 300m에 불과해 주민이 대피할 일도 없다. 현재 대형 원전의 방사선 비상 계획 구역의 반경은 16㎞ 안팎이다. 또 자연 순환 냉각 방식을 채택해 정전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자동화가 가능해 운영 인력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공장에서 미리 모듈로 제작한 뒤 필요한 곳에 설치하면 되니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다. 모듈 수에 따라 발전 용량을 조절하는 것도 쉽다. 부품 수도 대형 원전의 100분의 1 수준인 1만 개 안팎으로 감소한다. 혁신형 SMR의 경우, 대형 원전의 절반도 안 되는 24개월이면 공사를 끝낼 수 있다. 통상 10조 원 이상 드는 대형 원전과 달리 소형 원전 건설은 1조 원 미만으로도 가능하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도 SMR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 17기, 러시아 17기, 중국 8기, 일본 7기, 한국 2기 등 70여 기의 SMR가 경쟁하고 있다. 사실 SMR는 과거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에서 쓰이던 군사용 기술을 기반으로 해 군사력이 큰 나라가 유리하다.
빌 게이츠-워런 버핏도 투자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행보다. 게이츠가 설립한 원전기업 테라파워와 버핏 소유의 전력회사 퍼시피코프는 미국 와이오밍주의 한 폐쇄 석탄공장 부지에 나트륨을 이용한 소형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10억 달러를 들여 차세대 SMR의 일종인 소듐냉각고속로(SFR)가 세워진다.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SFR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사용하는 만큼 방사능 폐기물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출간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그는 "기후 변화를 피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야 한다"며 "원전 기술 혁신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엔 SMR와 차세대 원자로에 7년간 3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미 정부의 계획도 발표됐다. 이에 앞서 미국 누스케일(NuScale)은 SMR 최초로 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인증 심사도 마쳤다. 영국의 롤스로이스는 2050년까지 SMR 16기를 세운다는 구상이다. 캐나다도 SMR 액션플랜을 발표했다. 영국국립원자력연구소는 2035년까지 전 세계에서 SMR 650~850기가 건설돼 시장 규모가 380조~6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SMR는 기후변화를 막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게 원자력 업계 주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데이터 통신 폭증과 전기차 대중화로 전기 사용량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막고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재생에너지론 탄소중립 불가능
물론 태양광과 풍력, 수력 등 청정 발전의 비중을 늘릴 순 있지만 한계가 있다. 재생에너지는 기상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크고 수요의 변화에 따른 탄력 대응도 어렵다. 갑자기 전기 수요가 커졌는데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안 불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전력 수요가 가장 큰 때는 여름 낮인데 태양광 발전 효율은 5월이 가장 높은 것도 미스매치이다.
국토는 넓지 않고 산업 에너지 사용량은 큰 우리나라가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에너지 수요에 탄력 대응하는 건 힘들다. 반면 SMR는 응답성이 높다. 필요할 때마다 쉽게 껐다 켰다 할 수 있다.
"시제품도 없다, 실체 없는 사기"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SMR는 '실체가 없는 사기'라고 반박한다. 크기를 아무리 작게 만든다고 해도 원전의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소형 원전은 같은 양의 전기 생산을 위해선 대형 원전보다 더 많은 사이트에 원자로를 건설해야 한다. 위험이 분산될 뿐 사고 확률은 더 커질 수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전력기술에서 설계 업무 등을 하다 나온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SMART는 당초 러시아제 핵잠수함의 원자로를 원형으로 한 것인데 결국 미국이 승인하지 않아 시제품도 만들지 못한 원자로”라며 “원전 기득권 세력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계속 확보하기 위해 이미 실패한 SMART를 다시 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성도 대형 원전보다 떨어져"
이 대표는 SMR의 경제성도 부인했다. 발전 용량 1,000㎿ 대형 원전을 짓는 데 3조 원가량 드는데 100㎿짜리 SMR를 세우는 데 1조 원이 들기 때문이다. 작게 지으니 비용이 적은 듯 보이지만 ㎾당 발전 단가는 대형 원전에 비해 3배가량 높아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그동안 SMR는 대형 원전에 밀려 뒷전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어디에 지을지도 해결책이 안 보인다. 5,000억 원 이상 쏟아부은 SMART는 2012년 설계 인증에도 국내에선 어느 곳도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아 세울 수 없었다. 결국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양해각서를 맺고 수출을 추진했지만 이후 진척은 지지부진하다. 사우디가 SMART에 관심을 보인 것도 사실 민간 발전보다는 이를 통해 핵무기 개발 기술을 얻고 인력을 교육시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는 게 이 대표의 귀띔이다. 중동에서 이란과 맹주 자리를 다투는 사우디는 이란 핵 개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아직 시제품조차 만들어진 게 없고 이를 통해 안전성을 검증한 적도 없는데 원전업계가 달랑 설계 도면만 갖고 앞으로 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과대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 프레임에서 벗어나 과학적 접근 필요
이 대표는 “빌 게이츠가 SMR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억만장자의 지적 유희”라며 “그가 한국이나 중국과 공동 사업을 하려는 것도 위험 회피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독일은 모든 원전을 폐기하기로 했고 이젠 재생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수출까지 한다”며 “지금 당장 전기가 필요하다고 대형이든 소형이든 원전을 만들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핵폐기물을 후대에 물려주는 건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역설했다.
찬반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판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 프레임으로 에너지 산업을 왜곡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도 넓어지고 있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문재인=탈원전’ 프레임이 너무 강해 원전을 찬성하면 꼴보수, 반대하면 '문파'로 낙인이 찍힌다”며 “정치적 편 가르기가 아닌 과학적 자세로 안전하고 탄소중립 목표도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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