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간 멜로못한 한 풀어" 제주여자 고두심의 '빛나는 순간' [N인터뷰](종합)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국민 며느리'에서 '국민 엄마'로. 고두심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그리운 이를 떠오르게 만드는 배우다. 누군가는 고두심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누이, 이모를 그린다. 그런 고두심이 멜로에 도전했다. 무려 서른 세살이나 차이가 나는 까마득한 후배 배우 지현우와 함께 한 '파격 멜로'다.
"나는 맨날 멜로물에 뽑히지 않은 엄마였어요. 엄마를 49년간 했는데 그 한도 좀 풀고, 어떤 젊은 친구가 걸릴까, 누가 그물망에 걸리려나 생각하면서 기다렸지.(웃음) 감독님은 진짜 절실했어요. 고두심이 아니면 안 된다고, 나를 놓고 썼다고 하니까."
영화 '빛나는 순간'은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제주 해녀 진옥과 그를 취재하기 위해 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제주도 올로케이션으로 찍은 작품이다. 고두심은 극중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제주 해녀 진옥 역을 맡았고, 지현우가 진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을 연기했다.
"감독님이 말씀을 예쁘게 하신 게 '제주 하면 고두심, 고두심 얼굴이 제주도의 풍광이다.'라네요. 그런 얘기를 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 얘기를 들을 만큼 뭔가 보여지는 게 있어서 보여진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거기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치가 있어 무겁지만, 어느 누가 해도 그 무게는 갖고 가야하겠죠. 나만큼 제주 해녀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게 가장 컸어요. 해녀는 제주의 상징이고 혼이에요. 그분들의 힘에 의해 오늘의 제주도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정말 해야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도 출신인 고두심에게 해녀는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런 해녀를 연기하는 것은 고두심에게 숙명 같은 일로 받아들여진 듯 했다.
"그분들은 경계를 넘나드는 삶이에요. 생과 사를 생명줄 하나에 겨우 지고서 그 바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요. 깊은 바다까지 수십리를 들어가서 그분들은 항상 약을 먹어요. 머리가 아프다고 해요. '뇌신'이라는 두통약을 먹어요. 망망대해에 들어가서 잘못돼도 살려줄 사람도 없고, 상어 같은 물고기랑 만날 수도 있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 일을 오래 하신 게 대단하신 거죠."
영화는 제주 4.3사건을 아우른다. 진옥의 삶은 거친 인생의 파도를 온몸으로 견뎌 온 제주도 해녀의 희노애락을 담아냈다. 4.3 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물질을 알려주다 딸을 잃고, 남편의 병수발까지 들며 살아온 진옥의 인생에 제주의 역사와 한이 서려있다.
"나는 51년생이고 그 사건은 48년도로 알고 있어요. 친척들이나 부모님이 얘기하신 걸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집에서 울음이 나오고, 저집에서 울음 소리가 나서 왜 울음 소리가 나냐고 했더니 다 몰살이 됐다더래요. 이 동네는 총을 맞았는데 그 앞 사람까지 고꾸라졌는데 자기는 살아났다는 거에요. 그림으로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죠. 저는 그런 것을 들으며 살아온 세대라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마냥 느껴요. 길에서 도망가려면 시체를 밟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시체가 늘어져있었다네요. 어디 모이라고 해서 가서 모이면 한꺼번에 죽이고 했대요."
고두심은 부모 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 속에서도 진옥이 경훈의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빛나는 순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빛나는 순간들 중 하나다.
"그 장면은 더하라고 해도 하겠더라고요. 그 신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현실에 가까울 정도로 내뱉어지지 않았나. 마지막에는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제주도에 그 말이 있어요. 부모님들이 그런 말을 해요, 딸들이 고부 갈등을 겪고 남편에 대한 고충을 얘기하면 참고 살라고 하면서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하죠. 오죽 할말이 없었으면, 그것도 너에게 힘이 될 거라고 부모 입장에서 해주시는 말씀이죠. 그 말이 참 아파요."
'빛나는 순간'은 전혀 다른 세대의 두 남녀가 서로가 가진 상실과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따뜻한 사랑을 그렸다. 나이 차 때문에 일견 '파격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나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하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나이에서 오는 위화감을 줄였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33세차는)너무 무리는 무리에요.(웃음) 그래도 그것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없어요 항상. 비슷한 연배에 같은 것을 공유한 사람들이 정서도 같고, 그게 좋죠. 서른 살, 스무 살이 넘어가는 관계는 특별하지 않으면 다가올 수 없는 그런 일이에요. 그렇지만 있을 수 있죠. 나 자신도 그걸 그냥 못한다는 건 아니었어요. 이런 경우가 오지도 않겠짐나 온다 해도 그렇게 '거부한다'는 아닌 것 같아요."
멜로에 대한 갈증이 풀렸느냐고 물으니 고두심은 "그거 가지고 풀리겠냐, 2탄, 3탄이 나와야지"라고 받아쳐 웃음을 줬다. 지현우의 팬들로부터 받을 부정적인 피드백을 걱정하면서도 "우리 팬도 만만치 않다 현우야"라고 말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좌중을 폭소케 했다.
"사랑에는 여러 사랑이 있어요. 이성간의 교감만 다 사랑이라 볼 수는 없죠. 나도 그렇게 다가갔어요. 엄마와 아들의 사랑 같겠지. 가족간의 어떤. 엄마가 바라보는 시선의 어떤, 주고 싶은 사랑. 저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걸 주고 싶은 사랑, 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을 주면, 뭘 주면 올바르게 정신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끔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사랑을 하는 거예요. 연기 하면서 나는 계속 그런 사랑이었어요. 어떻게 남녀간의 사랑으로만 가겠냐, 그러니까 다가가지더라고요."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는 고두심에게 오랫동안 무겁고 부담이 되는 이름이었다. 그는 "조수미, 이미자, 조용필 정도는 돼야 '국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며 부담스러움을 느껴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그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잘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며 그것 역시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요즘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후배들도 더러 있죠. 세상이 메말랐구나 싶어요. 대문 밖에 한발짝만 나와도 고두심이 슬리퍼를 신고 나온 한 커트만 보고 '그 여자 화장도 안 하고, 배우 같지 않고' 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게 얘기하죠. 내 속이 그런 것도 아닌데 왜 한 커트만 보고 얘기하시지 서운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어디 음식점이라도 가면 안다고 프라이라도 하나 더 주시고, '잡숴보세요' 해주세요. 그럴 때는 치유가 되고 감사하죠. 사랑도 받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 거죠. 자신이 좋은 것들을 취하면서 가야하는 일 같아요. 사랑 받은 순간을 기억하면서 그걸로 자신을 다독이며 가는 거죠."
최근 고두심은 지현우와 함께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했다. '아는 형님'의 주역 강호동은 고두심과의 오랜 루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고두심은 오랜 루머에 대해 스스로 언급하며 "있지도 않은 사실"이라며 답답해 했고, '아는 형님'에 나간 것 역시 그런 루머 앞에서 떳떳함을 보여주기 위함임을 알렸다.
"있는대로 다 까발리고, (내가 할 수 있는)베스트로 다 했어요. 행동, 율동 움직임 같은 것도 내 나이에 맞지 않은데 내 속에 내재된 걸 보여줬죠. 그걸 보여주면서 이게 전부니까, 강호동과의 루머나 음모설도 믿지 마시라(는 의미도 있었어요.). 있지도 않은 사실로 그렇게 매도해서 사람을 괴롭히고. 괴로워요. 지금도 고두심 치면 꼭 나와요. 만약 사실이었다면, '실수였지만 있었던 일이다' 그런 거라면 제가 받아야 할 응당의 벌일 수 있겠죠. 그런데 이건 없는 사실이 인쇄까지 돼서 꼬리표로 남아서 몇십년을 따라다니는데 억울하죠."
실제 만난 고두심은 '국민 엄마'의 이미지에 걸맞을 만큼 소탈하고 따뜻했지만,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지혜를 쌓아온 대가의 면모도 있었다. 그런 그가 후배 배우들에게 해줄 수 있는, 혹은 전달하고픈 마음가짐은 "미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남을 미워하되 잠깐 미워하고 빨리 풀어라, 자기가 알아서 풀고. 후배들에게 그 얘기를 많이 해요. 어떤 형태, 무슨 역할로 만나는 인연이 될지 모르잖아요. 배우는 눈빛을 보면서 대사를 많이 해요. TV 드라마에서는 항상 사람의 눈을 보면서 설명해요. 가르침을 주고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눈빛 볼 대 미워하는 사람의 눈빛을 볼 수 있겠나, 다른 데 보면서 하면 연기가 자연스럽겠나, 네 자신이 손해니까 절대로 미워하지 말아라, 해요. 물론 미운 짓을 하죠. 형제도 부부도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라도 해소하고 풀어야 해요."
eujenej@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한달 120 줄게, 밥 먹고 즐기자"…편의점 딸뻘 알바생에 조건만남 제안
- 지퍼 열면 쇄골 노출 'For You♡'…"이상한 옷인가?" 특수제작한 이유에 '반전'
- "순하고 착했었는데…" 양광준과 1년 동고동락한 육사 후배 '경악'
- 숙소 문 열었더니 '성큼'…더보이즈 선우, 사생팬에 폭행당했다
- 미사포 쓰고 두 딸과 함께, 명동성당 강단 선 김태희…"항상 행복? 결코"
- "로또 1등 당첨돼 15억 아파트 샀는데…아내·처형이 다 날렸다"
- "자수합니다"던 김나정, 실제 필로폰 양성 반응→불구속 입건(종합)
- '나솔' 10기 정숙 "가슴 원래 커, 줄여서 이 정도…엄마는 H컵" 폭탄발언
- '55세' 엄정화, 나이 잊은 동안 미모…명품 각선미까지 [N샷]
- "'누나 내년 35세 노산, 난 놀 때'…두 살 연하 예비신랑, 유세 떨어 파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