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 백신 의존 안한다" '쿠벤저스' 나라 쿠바서 자체 개발 백신 청신호
[경향신문]
선진국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백신 개발에 나선 쿠바에서 희망적인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3차 접종을 해야하는 백신을 2차까지 맞았을 경우 예방효과가 62%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쿠바 정부는 긴급 사용승인이 나면, 백신 관련 지식재산권을 모두 공개해 백신 접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3세계에 공급할 계획이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와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등에 따르면, 이날 쿠바 국영 바이오제약회사인 바이오쿠바파마가 핀라이백신연구소와 함께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소베라나2 백신 2차 접종 결과 62%의 예방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소베라나는 ‘주권’이라는 뜻이다. 핀라이연구소의 비센테 베레스 벤코모 소장은 “몇 주 뒤 3차 접종 결과까지 나오면 효과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19~80세 자원봉사자 4만4000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에 들어간 소베라나2는 미국 노바백스와 마찬가지로 단백질 재조합 백신이다. 바이러스 표면에 붙은 스파이크를 재현에 몸에 주입하고 감염 시 면역체계가 인지해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화이자와 모더나처럼 초저온 냉동 보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백신 등록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중남미 지역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이 된다.
‘의료강국’ 쿠바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강대국의 백신을 수입하지 않고 자국에서 백신을 개발하는 데 매달려 왔다. 전문가들은 쿠바가 위험부담이 큰 도박을 하고 있지만 성과를 거둘 경우 과학적인 명성과 함께 세계에 백신을 공급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쿠바는 현재 5개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이중 소베라나2와 ‘압달라’가 최종 임상단계에 있다. 압달라는 ‘쿠바 혁명의 아이콘’ 호세 마르티가 쓴 시 제목이다. 백신 이름에서부터 쿠바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에서 “우리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을 지원할 수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임상시험 결과는) 세계적인 수준을 얻었다”고 말했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이웃나라들은 쿠바산 백신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자메이카,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여러 나라가 쿠바산 백신을 구매할 계획이고, 이란은 소베라나2 임상시험을 하며 이미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쿠바 정부는 연말까지 백신 1억도스를 생산해 2,000만~3,000만도스는 자국민에게 접종하고 나머지는 전량 수출할 계획이다. 타국에 백신 생산 허가권을 내주거나 빈국에 기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의료진을 타국에 파견해 ‘쿠벤져스’로 불려온 쿠바가 남미를 넘어 세계 빈국의 백신 공급처가 될 가능성도 높다.
1959년 혁명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쿠바는 미국의 오랜 제재와 체제의 한계 등으로 경제 상황은 나쁘지만 생명과학 분야만큼은 투자 1순위로 삼아왔다. 1980년대에 세계 최초의 뇌막염 백신을 개발한 이후 여러 백신을 개발해 수출해왔다. 의료시스템도 수준급으로 평가된다. 쿠바 의료진은 다른 국가에 대한 활발한 인도적 지원으로도 명성이 높다. 2004년부터 빈곤국들에 안과의사들을 파견해 무상으로 지원했고, 2010년 아이티의 콜레라와 2014년 이후 서아프리카 에볼라 창궐 때도 의료진을 파견했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전 세계 20여개국에 1200여명의 의료진을 파견해왔다.
세계보건정책 전문가인 클레어 웬햄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는 “국제사회 제재로 쿠바 의료계가 창의적이고 자립적일 수밖에 없었다”면서 “덕분에 쿠바 연구 성과는 훌륭하고 다른 나라들이 개발하지 못하는 백신들도 자체 연구를 통해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미보건기구(PAHO) 국장 카리사 에티네는 “중남미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진원지가 됐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은 세계 생산랸의 4% 미만에 불과해 의약품 수입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백신 개발 뿐 아니라 의약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문제는 중남미 전역의 보건 안보 문제와 직결돼있다”면서 쿠바 백신 개발에 희망을 드러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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