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남편·의붓딸·엄마·아버지.. 연이은 가족 병간호에 평생 바쳐

기자 2021. 6.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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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시댁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의 딸이 하늘나라로 간 후 이번엔 남편이 암에 걸렸습니다.

제 남편도 캐시를 돕기 위해 시댁으로 가 시어머님 옆에서 몇 달씩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곳에 언제나 남아 있는 캐시는 여전히 남편과 시어머님, 시아버지를 돌봐야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작년에 제 남편은 시아버님을 돌보느라 6개월을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혀 지냈고 늦은 가을 간신히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올 3월 캐시로부터 나쁜 소식을 듣고 다시 시댁에서 지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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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시누이 캐시에게

나는 지금 시댁에 와 있습니다. 시아버님은 90세가 넘으셨는데, 6·25전쟁 참전 용사로 원하시면 시설 좋은 요양원에 무료로 가실 수 있는 자격이 30년 전부터 있었지만 가기 싫다고 하셔서 바로 옆집에 거주하는 딸이 돌봐주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그 딸 캐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캐시는 고등학교 졸업 일 년 전 결혼해 두 아들을 뒀는데, 큰애가 초등학생 때 이혼을 하게 됐습니다. 이혼 후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로 들어간 대학에서 4년 장학금에 소정의 생활비까지 받으며 공부했고 취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까지 캐시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고 아이들을 돌봐준 건 시어머님이셨습니다. 시어머님이 딸이 제대로 살 수 있게 도와준 덕에 몇 년 후 캐시는 재혼했습니다.

행복은 잠시, 재혼한 남편의 딸이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친모는 아픈 딸과 의절했고 병간호하다 지친 새신랑은 집을 나가서 할 수 없이 캐시가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10년 동안 보살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해 사는 두 아들의 아이들도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의 딸이 하늘나라로 간 후 이번엔 남편이 암에 걸렸습니다. 또 얼마 후 시어머님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매일 본인 남편과 엄마의 병간호로 극도로 힘든 시기였지요.

제 남편도 캐시를 돕기 위해 시댁으로 가 시어머님 옆에서 몇 달씩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곳에 언제나 남아 있는 캐시는 여전히 남편과 시어머님, 시아버지를 돌봐야 했습니다. 시간 맞춰 하루에 세 번 다른 약, 음식, 목욕, 청소 등등…. 그런 생활이 이어졌고, 얼마 후 시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고단한 일은 줄어들었지만, 캐시 남편에겐 새로운 암 두 개가 더 생겼고, 시아버님은 점점 연로해져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작년에 제 남편은 시아버님을 돌보느라 6개월을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혀 지냈고 늦은 가을 간신히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올 3월 캐시로부터 나쁜 소식을 듣고 다시 시댁에서 지내는 중입니다. 캐시의 심장이 25%만 작동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합니다. 낫는 병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 일찍 와서 밤새 둔 소변 통을 치우고 시아버님의 침대 시트를 걷어 세탁기에 넣고, 시아버님 옷을 입혀드리고 머리를 빗겨드리고 당뇨 체크와 혈압을 잽니다. 그리고 시아버님이 남편이 준비한 아침을 드시는 걸 보고 자기 집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점심을 차려드리고 저녁 식사 후 주무시기 전에 옷을 갈아입히고 약을 발라드립니다. 얼마 전부터 나라의 지원으로 목욕과 간단히 집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오기 시작했지만, 그 사람이 오기 전엔 캐시가 이틀에 한 번꼴로 목욕을 시켰다 합니다.

캐시는 지금까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을 훌훌 떠나 여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두 아이와 그들의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과 재혼한 남편과 그의 아이까지 돌봐주는 일로 다 가버렸습니다. 요즘 그녀를 바라보는 제겐 짠함과 불만 없이 한결같은 생활을 하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고, 감사함과 미안함, 걱정스러움이 가득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생활 습관이나 환경만 다를 뿐 자식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 같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코니 스트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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