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중공업·모빌리티 '동맹', 선진국도 부러워한 韓 탈탄소 기술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탄소중립'의 긴 항해를 시작했다. 기존의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강자인 대한민국에 탄소중립은 생존의 필수요건이자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2050년 탄소 발생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준비 상황, 풀어야할 과제 등을 점검한다.
결국 기술 없이는 탄소중립도 없다. 탈탄소 그린뉴딜 기술의 핵심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될 수소 등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에너지를 수입해 활용하는데 치우치던 우리 산업계보다 에너지 수출을 주력으로 해 온 나라들이 탈탄소 에너지 기술 면에서 더 빨리 걸음을 옮기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던 선진국들도 이제 한국을 주목한다. 수소 생산은 물론 액화와 운송기술 면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 수준을 따라잡을 태세를 갖췄기 때문이다. 활용 면에서는 외려 이미 선행주자들을 따라잡았다. 기업의 지속적 글로벌 시장 개척과 정부의 R&D(연구개발) 특단 지원 2인3각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업종별로 볼 때 가장 앞서가는건 역시 석유화학업계다.
SK그룹은 최근 투자지주사 SK(주)를 통해 미국의 '청록(turquoise)수소' 기업 모놀리스에 투자했다. 이 투자가 의미심장한건 모놀리스가 세계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청록수소 업체이기 때문이다. 궁극의 친환경 수소인 '그린수소'와 양산형 친환경수소 '블루수소'의 중간단계가 바로 청록수소다.
그린수소는 태양광 등을 활용, 수소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블루수소는 천연가스 등을 활용해 수소를 만들어서 탄소는 배출하나 이를 별도로 포집(CCS)한다. 청록수소는 탄소가 고체탄소 형태로 배출돼 별도로 포집하는데 비용과 노력이 적다. SK의 청록수소 투자는 한국의 탈탄소 기술 투자가 얼마나 다양한 영역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효성의 도약도 눈부시다. 수소시장서 이미 십수년전부터 조용히 기술을 개발해 온 효성은 세계 최대 액화수소 단지 조성에 이미 착수했다. 코앞인 2023년이면 울산 용연국가산단에서 연 1만3000톤의 액화수소를 생산한다. 현대차와 포스코, SK 등도 각각 블루수소를 시작으로 종래엔 그린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올 상반기 수소업계 최대 뉴스 중 하나는 바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수소사업 진출이었다. 우선 부각된건 현대오일뱅크와 사우디 아람코 간 합작 수소생산이다. 이 과정에서 더 눈길을 끄는건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현대중공업에서 수소 운반선, 수소 추진선, 암모니아 운반선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 수소산업의 '미싱링크'(빈 고리)를 채울 수 있는 기술이다.
수소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고 있다. CCS기술을 앞세워 브라운수소(갈탄 등으로 수소생산)와 블루수소 양산 면에서 앞서가는 호주, 아프리카 북부 수소 양산 계획을 세우고 있는 ES(유럽연합), 해외서 수소를 대량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일본 등의 공통의 고민이 바로 수소의 안정적 대량 운송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본격적으로 뛰어든 초저온 액화수소 수송선박과 아예 수소를 연료로 쓰는 수소추진선, 액화수소의 대안 중 하나인 암모니아 운반선은 이런 국가들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선 부문서 세계 최고수준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 조선사들의 기술개발 가능성이 가장 높다.
기존 가스 배관망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정유사들은 에너지 운송망 기술 면에서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 가스 도입과 배송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각 기업별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소의 생산과 운송에 이은 활용 면에서는 단연 현대차그룹이 앞선다. 모빌리티(자동차용) 수소연료전지 면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초로 수소대형트럭 양산 라인을 갖추고 지난해 이미 EU로 수출을 개시했다. 중국과 미국 등 대형 시장에 속속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국내서도 포스코와 우선 포항·광양 제철소 내 운송차량을 수소로 단계적으로 완전 전환하기로 했다. 수소전기차 넥쏘의 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가 합작해 석탄을 수소로 전환하는 수소환원제철 등 혁신적 신기술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전기차용 2차전지) 3사는 글로벌 시장서 사업영역을 급속도로 넓히고 있다.
두산그룹이 주도하고 있는 발전용 연료전지 기술과 수소터빈기술, 한화그룹이 실증기술을 쌓아가고있는 수소연료전지 대규모 발전소 운영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의 그린뉴딜 기술이다. 업계는 발전용 수소시장에서 모빌리티용 수소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청사진은 나왔다. 기업은 앞서간다. 꼼꼼히 보면 채워져야 할 빈 공간들이 많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 본격화하진 않고 있지만 2060년 탄소중립 계획을 못이긴체 내놓은 중국은 정부와 국영기업 공조로 빠르게 그린뉴딜 시장에서도 도전해올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변수를 맞았지만 일본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하는 탈탄소 녹색성장 계획에 이미 시동을 건 상태다.
한국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수소는 인프라가 동반하지 않는다면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인해 충전소 보급이 늦어지면서 현대차 등 관련기업들이 발만 구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서해안에 대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태양광 및 풍력단지 역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훨씬 크게 힘을 받을 수 있다.
탈탄소 그린뉴딜에 기반을 둔 에너지 대전환이 미래세대를 위한 성장동력이라는 점에서 '탈원전' 등 정책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소형원전을 통한 수소생산 기술 개발에 나선 두산이나 먼 바다에서 원전을 활용한 발전 및 수소생산 기술 개발에 착수한 삼성중공업 등은 왜 혁신적 기술 개발을 시작하면서도 죄인처럼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며 "탈탄소라는 전세계적 변화 앞에 정부가 적어도 R&D 면에서라도 보다 유연한 정책을 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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