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도 꺼도 살아나는 불꽃..전기차 화재에 소방관 골치
리튬이온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의 화재 진압이 어려워 소방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미국 NBC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불이 꺼진 것 같이 보여도 불꽃이 다시 살아나 화염으로 번져 화재가 장시간 이어지는데, 제조사나 소방대는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붓는 것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매체는 연방규제기관들이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을 소방관에게 경고하지만, 소방대 대부분은 전기차 화재 진압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4월 17일 미 텍사스주 휴스턴 외곽에서 테슬라 모델 S 차량이 충돌사고로 화염에 휩싸였을 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우들랜즈 소방서의 팔머 벅 대장은 화재 진압하는데 진땀을 뺐습니다.
불이 다 꺼진 듯하다가도 차체의 바닥 부분에서 계속 불꽃이 튀면서 화염으로 번졌고, 소방수를 계속 쏟아부어도 자꾸 불이 다시 붙었습니다.
소방관 8명이 달라붙어 전기차의 불을 끄는 데 7시간이 걸렸고, 2만8천 갤런(10만6천 L)의 물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일반적인 내연기관 차의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 보통 300갤런의 물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전기차에 난 불을 끄는데 100배에 달하는 물을 쓴 것입니다.
이런 물의 양은 벅 대장이 지휘하는 소방서 전체가 보통 한 달에 사용하는 양과 같고, 미국 평균적인 가정의 2년치 사용량입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전기차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지만, 전기차 화재진압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된다고 NBC방송은 전했습니다.
특히 리튬이온배터리는 완전 진화에 최대 24시간이 소요되고, 배터리팩이 철재로 덮인 탓에 소화약제가 제대로 침투하지 않아 소방대가 진화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 X에 장착된 대형 리튬이온배터리는 보통 미국의 한 가구가 이틀 이상 쓰는 전기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작년 12월 서울에서도 한 아파트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테슬라X 모델 전기차가 벽면을 들이받은 뒤 불인 나 배터리가 다 탈 때까지 연기와 불꽃이 20∼30분 간격으로 발생하면서 진화 작업에 5시간이 걸렸습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구체적인 전기차 화재진압 매뉴얼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NBC 방송은 테슬라의 응급대응 가이드에는 화재 발생 시 그저 많은 양의 물을 쓰라고 권고할 뿐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일 브랜드인 폭스바겐도 전기차 화재 진압방식에 대한 질의에 독일 소방당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런 화재를 진압하려면 상당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고만 답했다고 NBC는 전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소방대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화재 진압 방식의 차이를 적절하게 교육받거나 훈련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교통안전 규제기관도 비슷한 지적을 내놨습니다.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작년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기차 배터리에서 '컷 룹스'(cut loops)라 불리는 전류 차단 메커니즘이 심각한 충돌사고 시에 자주 무력화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전기차 제조사의 응급상황 대처 지침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진압에 필요한 구체적인 진화방식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소방관의 이해도도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기차 화재 진압 경험이 있는 소방관들은 주변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최선의 진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 콜로라도주의 소방대에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전기차 화재 진압 경험을 설명한 벅 대장은 조만간 휴스턴의 소방대에도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그는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제조사가 점점 더 큰 용량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용하면 전기차 화재 진압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벅 대장은 "진화에 필요한 물의 양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긴 화재진압 시간"이라면서 "불이 꺼질 동안 소방대가 그 시간만큼 묶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영규 기자ykyo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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