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는 청자·백자 못잖아.. 문방도구 넘어선 동양문화의 정수"

장재선 기자 2021. 6. 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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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81)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빼어난 문사(文士)이다.

"벼루는 단순한 문방 도구가 아니라 동양문화의 정수입니다. 옛 선비들은 서화(書畵)를 연전(硯田)이라 했습니다. 벼루로 짓는 농사라는 뜻이지요. 연전은 시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조선 전기의 명품들을 빚어낸 평북 위원석(渭原石)과 19세기 이후 충남 보령시 성주산에서 채취한 남포석(藍浦石) 벼루가 주종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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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 시인이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賜恩硯)’의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위원화초석 장생문일월연.

■ 이근배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

조선 전기 명품 평북 위원石 등

1000여점 중 100개 뽑아 전시

해와 달, 꽃과 포도 등 조각 화려

“난 벼루·먹에 완전히 미친 사람

50년전 집 1채값에 벼루 구입도

韓 벼루 품격, 종주국 中 압도”

이근배(81)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빼어난 문사(文士)이다. 시, 시조, 동시 등을 통해 신춘문예 다관왕으로 등장한 이후 문학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활약해왔다. 그가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을 연다.

“벼루는 단순한 문방 도구가 아니라 동양문화의 정수입니다. 옛 선비들은 서화(書畵)를 연전(硯田)이라 했습니다. 벼루로 짓는 농사라는 뜻이지요. 연전은 시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전시 개막 전날인 1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시는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라는 제목으로 그가 반세기 동안 모은 벼루 1000여 점 중 100개를 골라서 선보인다. 조선 전기의 명품들을 빚어낸 평북 위원석(渭原石)과 19세기 이후 충남 보령시 성주산에서 채취한 남포석(藍浦石) 벼루가 주종을 이룬다.

전시장 벽면에는 그가 벼루에 관해 지은 시들이 함께 걸려 있다. ‘선비는 하루 세수는 안 해도/ 벼루는 씻는다?/ 게으르기로 짝이 없는/ 내가 어쩌다 벼루라는/ 도깨비보다 무서운 귀신에 홀려/ 서울 인사동이나 북경 꾸완청에서/ 먹 때에 절은 옛 벼루를 들고 와서는/ 얼굴이며 몸뚱이를 씻기는 일에는/ 시간을 물 쓰듯 한다’(시 ‘세연(洗硯- 벼루 읽기’ 중).

그는 스스로를 ‘연벽묵치(硯癖墨痴)’라고 했다. 벼루와 먹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아버지(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이선준)가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한학자인 조부 밑에서 컸다. 어렸을 때부터 붓과 벼루를 가까이하며 안목이 절로 길러진 것이다.

“1970년대 초 남들이 이중섭의 소 그림을 30만 원 주고 살 때 저는 벼루 하나를 당시 집 한 채 값인 100만 원을 주고 샀어요. 이후로 명품이 있다고 하면 어디든 가서 구했지요.”

그런 열정 덕분에 ‘샘이깊은물’ 창업자인 한창기(1936~1997)가 소장했던 ‘위원화초석 포도문일월연(渭原花艸石 葡萄文日月硯)’, 서양화가 김종학(84)의 수집품이었던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賜恩硯)’ 등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 벼루의 뒤에 보면 정조가 사도세자의 사부(師傅)였던 남유용에게 줬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벼루마다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 어찌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특유의 달변으로 얼음에 박 밀듯이 줄줄 벼루에 담긴 사연들을 읊었다. 그 말의 뒤끝에는 “우리 벼루는 청자, 백자 못지않은 문화재 예술품”이라는 자부가 곁들여졌다. 절로 고개를 끄덕거린 것은, 명품 벼루들의 미학에 압도됐기 때문이었다. 조선 초까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벼루들은 길이가 41㎝짜리가 있을 정도로 클 뿐만 아니라 그 세부 조각이 어찌나 섬세한지 감탄을 자아냈다. 해와 달, 새와 대나무, 꽃과 포도, 뱃놀이, 밭갈이, 벌거벗은 아이들까지 문양이 다채롭기 짝이 없다. 고려 시대 귀족의 애완동물이었다는 원숭이도 자주 등장한다.

그는 “한국의 벼루 품격이 종주국이라는 중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며 일본 학자 요시다 긴슈(吉田金壽)가 수제 한정판으로 만든 책 ‘藍浦石硯(남포석연)’을 보여줬다, “여기에 위원화초석 벼루는 신이 만든 솜씨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 학자들은 이에 대한 연구서가 없으니 아쉽지요.”

전시를 주관한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이 시인을 애국자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벼루라는 문방 도구를 통해 한국 미학을 재발견해줬다는 까닭에서다. 전시는 27일까지.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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