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탈원전 비판 여론 의식.. 전기요금 동결에 한전 부담만 커져
정부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연달아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올라 인상 요인은 충분했으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국민의 전기요금으로 충당한다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동결로 한국전력(015760)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21일 한전은 올해 7~9월분 연료비 조정 단가를 동결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3분기 연료비 조정 요금은 전분기에 이어 킬로와트시(kWh)당 3원 인하를 유지하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2분기 이후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필요성과, 1분기 조정단가 결정시 발생한 미조정액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감안해 3분기 조정단가는 2분기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통보했다.
정부가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묶어두면서 연료비 연동제 무용론이 거세지고 있다. 앞서 한전은 지난해 말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연료 구매에 쓴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국제 연료 가격에 따른 실적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3분기 전기요금은 3~5월 연료비를 토대로 결정되는데, 한전에 따르면 이 기간 유연탄의 평균 무역통계가격(세후)은 ㎏당 133.65달러로 2분기 기준 시점(지난해 12월~올해 2월) 113.61달러보다 18%가량 올랐다. BC유 가격 역시 18% 상승했다. LNG만 4% 떨어졌다.
한전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이미 대규모 부채를 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많은 빚을 내야한다는 점 역시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다. 한전의 ’2020~2024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연결 기준 한전의 부채는 지난해 132조4753억원에서 2024년 159조4621억원으로 20%가량 늘어날 예정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과 송·배전망 구축에만 35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처럼 여러 연료비 상승 요인에도 전기요금을 묶어둔 이유는 정부가 탈원전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시킨다는 여론을 우려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용처를 추가해 원자력발전 감축을 위해 발전사업 또는 전원개발사업을 중단한 사업자도 전력기금으로 비용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인데, 전력기금으로 탈원전 손실 비용을 메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산업부는 “전기요금 인상 등 추가적인 국민 부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전기요금 인상에 걸림돌이다. 지난 2분기 전기요금이 동결됐을 때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인 상황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정부는 물가 상승 우려가 높아지고 선거가 돌아올 때마다 정무적 판단에 의해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습성이 있다”며 “정부가 4분기에는 연료비 변동분이 조정단가에 반영되도록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선이 가까워지는만큼 전기요금 인상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물가인상 우려를 이유로 전기요금을 동결했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연제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은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서민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kWh당 3원 인하는 가정당 대략 1000원 정도라 물가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며 “지난해 한전이 흑자를 냈고 지난 1분기 10.5원 인하할 수 있는 것을 3원만 인하한만큼 활용 재원이 있다는 판단이겠지만 연료비 연동제라는 제도를 만들어놓은만큼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연료비 상승분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으면 한전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정부가 지난 2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한 탓에 한전의 2분기 실적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2분기에 877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목표주가 역시 3만2000원대에서 2만29000원대로 떨어졌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한전의 부채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당장 현 세대는 저렴하게 전기를 사용하겠지만, 한전의 늘어난 부채는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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