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정치에 인용된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누구의 심정일까

기자 2021. 6.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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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이맘때(2015년 6월 26일) 일이다.

미국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던 중 갑자기 말을 멈췄다.

뭐라도 던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갑자기 반전이 일어났다.

노래로 뜻을 전하는 일을 뮤직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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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6년 전 이맘때(2015년 6월 26일) 일이다. 미국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던 중 갑자기 말을 멈췄다. 정적이 흐른 후 그는 말 대신 노래(‘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의지나 감정을 시로 읊은 사람들이 있는데 악보가 안 남아서 그렇지 대부분 노래였을 거라 나는 짐작한다. 근거는 단순하다. 예로부터 서정시, 서사시에는 제목마다 가(歌), 혹은 곡(曲)이 붙어 있어서다. 공무도하가, 청산별곡부터 용비어천가, 사미인곡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양하고 소재도 다채롭다.

‘변해버린 건 필요가 없어/ 이제는 너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중) 실은 600여 년 전에도 ‘하여가’가 있었다. 사극 ‘용의 눈물’(KBS)에서도 나왔던 그 장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가객의 이름은 이방원으로 나중에 조선의 세 번째 임금(태종)이 된다. 그보다 30년 연상의 학자 겸 문신 정몽주는 젊은이를 꾸짖는 대신 단심가를 부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이제부턴 실화에 바탕을 둔 목격담이다. 살짝 각색했음을 미리 밝힌다. 사이가 안 좋던 두 선배 이야기다. 평소엔 눈도 안 마주치다가 부서회의만 열리면 사사건건 부딪쳤다. 회식자리에서도 둘은 멀찌감치 앉았다. 후배들은 그들의 언쟁을 독불전쟁이라 불렀는데 공교롭게도 한 분은 독문과, 한 분은 불문과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독불장군 기질도 일부 감안했을 거다.

그날은 자리배치 문제로 초반부터 회의 분위기가 안 좋았다. 차츰 언성이 높아지더니 급기야 두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뭐라도 던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갑자기 반전이 일어났다. ‘독일’ 선배가 의자에 앉더니 뭐라고 웅얼대기 시작한 거다. 옆자리에 앉은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건 음악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노래 부르신 거 맞죠.” 대답이 걸작이었다. “노래 안 부르면 경찰 불러야 되잖아.” “근데 아까 그 노래 제목이 뭐예요?” 종이에 제목을 적어줬는데 그 표정이 가엾기보단 귀여웠다.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곡 ‘어린이의 정경’ 중 ‘약이 올라서’였다. 그때 나는 배웠다. 화가 날 때는 노래를 부르자.

노래로 뜻을 전하는 일을 뮤직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른다. 직접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배경음악으로 틀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밥 딜런의 노래 ‘세상은 변하고 있다’(The Times They Are a-Changin’)의 가사를 인용한 사례는 유명하다. ‘아직 바퀴가 돌고 있으니 섣불리 말하지 마라/ (역사가) 누구의 이름을 부를지는 아무도 예측 못 한다’(And don’t speak too soon for the wheel’s still in spin/ And there’s no tellin’ who that it’s namin’).

‘삶과 꿈’이라는 1학년 교양과목에서 나는 뮤직스토리 만들기를 과제로 내곤 했다. 자신의 과거 및 현재 사진들을 재료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그것을 이야기로 발표하는 수업이다. 선곡은 자유지만 되도록 스무 살 인생의 목표가 담긴 곡을 고를 것을 권했다. 창작곡으로 뮤직스토리를 만든 학생도 더러 있었다. 평생 이런 걸 100개 정도 만들어보라고 나는 권장했다.

6월의 정치뉴스에 2명의 ‘뮤직 스토리텔러’가 등장했다. 같은 날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이 고른 곡은 각각 임재범의 ‘너를 위해’와 비틀스의 ‘길고도 험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이었다. 한 사람은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을 연설문에 패러디했다. 인용에선 빠졌지만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 있는 사람인가 봐/ 나는 매일 네게 갚지도 못할 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어’. 노래의 외연을 넓히면 연설자의 심정도 읽힐까. 지금으로는 알 수가 없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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