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적자 시내버스의 질주 마법 [여기는 논설실]
현대는 속도의 시대다. ‘속도전’ 이런 말도 흔하다. 현대의 총아 대도시에서는 더 하다. 속도는 곧 경쟁력이다. 최소한의 속도가 보장되면 시민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각자의 업무,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여가와 취미, 대인관계에서도 속도가 더 많은 활동과 더 폭넓은 반경을 제공한다.
속도를 평가하고 재는 각론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인터넷 속도, 와이파이 등 모바일의 정보처리 수준이 대표적이다.
속도 문제에서 교통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기본 교통망, 자가용차량의 보급 정도부터 지하철과 시내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준까지 구성 인자도 많다. 최근 한국 도시의 자동차 주행속도를 최고 50km로 제한 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코미디에 가까운 시대적 역주행이다. 속도가 관건인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속도를 고의로 줄인 게 타당한가.
◆‘유비퀘터스 시내버스’ 적자 수렁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최대다수에게 더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주요 시스템 가운데 하나가 대중교통 체계다. 한국 대도시의 대중교통은 밤낮 구별 없이, 근무일과 휴일 구별 없이 잘 굴러간다. 특히 시내버스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값싸게 이용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유비쿼터스 대중교통’이라 해도 무리 없을 것이다. 가성비 좋은 시민의 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한국의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시행의 주체, 운영의 원리, 편의성 등에서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구별하기 어려운, 굳이 구별할 필요도 없는 대중교통 체제의 두 바퀴다.
서울 등지의 시내버스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종종 놀라움의 대상이다. “미화 1달러 정도로 웬만한 곳은 어디든지 이렇게 갈 수 있다니!” 그들이 놀랄 만도 하다. 런던 같은 해외의 대도시에 가보면 대중교통까지도 여간 비싼 게 아니다. 미국 대도시에는 가격을 떠나 대중교통 자체가 부실하다. 전 세계 많은 나라 어디를 가도 대중교통망이 촘촘하고 쉽게 이용하도록 잘 짜 둔 곳이 많지는 않다.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올려주는 좋은 시스템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원하는 만큼의 속도를 제공해 준다.
여기까지는 현상이다. 우리가 쉽게 보는 수준이다. 국제비교 정도를 제대로 하려면 국제 경험과 안목도 있어야 하지만, 현상만 제대로 잘 봐도 평균치는 된다. 현상,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은 어떨까. 이렇게 편리한 대중교통, 유비쿼터스 시내버스와 유비쿼터스 지하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최근 감사원이 서울과 부산 시내버스 운행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꽤 오래 진행된 감사였다. 놀랍게도 노선 기준으로 서울 시내버스의 93%가 적자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보이지 않는 이면을 간략히 보자.
우선 대규모 적자, 2004년 준(準)공영제 도입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기는 하다. 물론 이를 볼 줄 하는 이도 적었고, 주목한 사람은 더 적었겠지만... 그 이후 적자폭이 매년 2000억~3000억원, 2020년에는 6600억원에 달했다. 편리 이면의 비용이 놀랍지 아니한가. 인구가 밀집한 서울이 이 정도라면 다른 광역시나 그 아래 시·군 급 지역의 노선버스 적자 상태는 굳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버스회사 수익금을 업체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관리하고, 적자 시 지자체가 보전해주는 방식이 준공영제다. 차량과 노무 관리 정도만 회사가 한다. 노선운행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물론 책임까지 지자체가 진다는 차원에서 사실상 공영제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현재 가격이 가능했던 것이다. 시내버스 요금은 비싸다고 보기 어렵다. 근래 꿈틀대는 각종 공공요금이 서민 가계에 영향을 줄 상황이지만, 다른 물가에 비하면 대중교통 요금은 아직 감내할 만하다.
◆편리한 대중교통도, 복지도, 안전도 결국은 ‘가격·비용’ 문제
이렇게 편리하고 한국 도시의 경쟁력까지 끌어올린 시내버스 시스템이 결국은 시 예산, 즉 시민 각자가 낸 세금에 기반 한 것이 편리한 유비쿼터스 시내버스에 가려진 일차적 진실이다. 이번 감사원 감사결과는 다수 시민이 잊고 있거나 외면해온 진실, 즉 ‘편리하고 값싼 시내버스 마법’의 이면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성비 좋은 지하철도 경영·운영의 본질에서는 같다. 한국경제신문이 감사결과를 인용해 서울시내버스에 대해 논평(사설)을 내놓은 까닭이다. 이번 감사결과나 시내버스에 대한 사설이 다른 매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차제에 우리 사회가 ‘편리 뒤에 숨은 비용’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서는 정치꾼들 교육이 제일 시급하고, 그 다음이 현직 공무원이다. 정치, 선거에 나서는 이들은 ‘교통도 복지’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중앙 정부, 국회 뿐 아니라 지자체도 그러고 있다. 정치와 행정 쪽은 그렇다 치고, 이용 시민 개인 개인이 ‘93% 적자’의 실상을 잘 볼 필요가 있다.
이쯤서 프레데릭 바스티아를 언급해야 할 상황이다. 바스티야는 일찍부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잘 연구해왔고, 쉽게 설명해왔다. 보이지 않는 것, 가려진 이면과 그 이면의 깊은 속내까지 볼 수 있고 실제로 봐야 경제발전도 선진사회도 가능해진다. 그런 나라가 실제로 잘 산다. 보이는 것 이면의 진실까지 봐야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하고 선동형 선심 공약도 가려낼 수 있다. 사방으로 뻗는 온갖 복지의 구조적 문제점도 이런 데 있다.
◆재원 언급 않는 복지, 비용 외면하는 공약이 '선동'인 이유
편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복지도 그렇고, 안전 문제도 다 그렇다. 가격과 비용에 때로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오늘’ ‘내가’ 세금을 내지 않지만 다음에, ‘언젠가’ 나 아닌 ‘누군가’ 부담하기에 심각한 적자에도 시내버스는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불편하다고, 성가시다며, ‘내가 굳이 그런 데까지..’라며 ‘가격 문제’를 회피하고 ‘비용 문제’를 외면하면 이 편리는 지속될 수 없다. 재원은 말하지 않는 복지, 비용을 외면하는 선심 공약을 선동이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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