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준석 따릉이, 쇼라도 좋으니까
평소 따릉이와 공유킥보드를 즐겨 탑니다. 취재하러 국회를 오갈 때도 종종 타곤 합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의 이른바 따릉이 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더 관심 있게 다가왔습니다. 30대 보수 야당 대표의 파격 행보니, 보여주기 쇼니, 하는 말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그만큼 이례적이었다는 뜻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준석 대표의 따릉이 출근은, 쇼였을까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이야기하자면, 연출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계산된 장면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해당 사진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사진기자 2명만 촬영했다고 하네요. 신임 당 대표의 첫 출근길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이 대표가 도착 직전 본청 뒤편으로 (국회 본청은 휴일에 뒷문만 개방합니다)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건진 사진이라는 설명입니다. 만약 '짜고 치는' 연출이었다면 기자단에게 공지가 됐을 테고 사진뿐 아니라 방송사 영상취재기자들도 분명히 영상을 찍었을 겁니다. 다만 머리 좋기로 소문난 이 대표가, 아무 생각 없이 따릉이를 타진 않았을 거라는 게 기자의 생각입니다.
▶ 이준석 '따릉이' 출근 사진, 이렇게 보도됐다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869 ]
그런데 이 대표의 '따릉이 통근'이 만에 하나 쇼였다고 해도, 정색하고 욕할 일인가 의문이 들긴 합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말이죠. 일단 따릉이나 공유킥보드 같은 공유 이동수단 자체가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고,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같은 대중교통 플랫폼에서 최종 목적지 바로 앞까지 갈 때 타는 개념입니다. 저도 걷기 싫거나 늦었을 때는 불과 몇 분 거리라도 탑니다. 싸고 빠르니까요. 따릉이는 1천 원만 내면 1시간 내 무제한으로 탈 수 있고 공유킥보드도 기본 요금 1천 원 남짓에서 기껏해야 몇백 원씩 붙는 구조입니다. 걷기는 조금 멀고 차 타고 가기에 애매한 곳 갈 때는 사실 최고입니다. 거기다 따릉이는 사람의 힘으로, 공유킥보드는 전기로 움직이니 친환경 이동수단이기도 합니다. 저 같은 뚜벅이들한테는 매우 소중한 문명의 이기죠(주변에 이용자들이 있다면 한 번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이준석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한 가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이준석이 아닌 다른 정치인이 따릉이를 타고 출근했으면 어땠을까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신승을 거두고, 자동차 대신 따릉이를 타고 출근했더라면, 이 정도 화제가 됐을까요? 저는 아니었을 거라고 봅니다. 아마 민주당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반응 또한 싸늘했을 겁니다. 나경원이 아닌 다른 기성 정치인을 대입해도 마찬가집니다. 왜?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거든요. 고위 공직자가 요금도 잘 모르는 대중교통을 굳이 탄다거나 또 유력 정치인이 잘 가지도 않던 재래시장을 굳이 선거철에 찾아 장을 보던, 그런 모습처럼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단순히 요즘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갖는 화제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그 차이가 이준석 대표가 실제 따릉이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출입기자라서 이 대표를 취재한 적도, 취재할 일도 없지만 하다못해 이 대표가 따릉이를 진짜 타든 말든, 왠지 타고 다닐 것 같은 이미지라도 가졌다는 사실에서 차이가 생긴다고 봅니다. 이준석이 하버드대 나오고 30대에 야당 대표 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따릉이나 공용킥보드를 이용할 줄 아는 실제 30대 남성이라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고작 따릉이 하나 쓴다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지점이 우리 정치가 그동안 잘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시민의 (정확히는 그가 상징하는 2030 혹은 3040세대의) 삶을 사는 정치인의 모습 말입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정치권에서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게 대중교통 요금을 물어보고, 어이없는 답변이 나오는 장면들입니다. 정몽준 전 의원은 지난 2008년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1천 원이던 버스 요금을 "70원 정도 되나" 말했다가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소환되는, 요샛말로 '영구박제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변창흠 전 국토부장관이 택시 기본 요금을 "1천200원 정도"라고 답해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길에 공항철도 요금으로 2만 원 낸 건 애교 수준입니다.
물론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대중교통 요금을 꼭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덕목이 '대중교통 타고 다니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런 모습을 지켜봐 온 시민들이 뼛속 깊숙이 체감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의 삶을 결정하는 이른바 '높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평범한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 혹은 인상 같은 것들입니다.
연말연시 늦은 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거리에서 몇 시간을 떨어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거나 어느 날 갑자기 안전모 안 썼다고 몇만 원 벌금 내본 공용킥보드 이용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명확히 인지하진 못 하더라도 다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만들고 논의하는 사람들은 따릉이나 공용킥보드 안 타고, 대부분 관용차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말이죠.
시민의 삶을 결정하는 자들이 시민의 삶에서 가장 멀다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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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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