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라서 밀려났던 아워홈 구지은..결국 범LG가 유리 천장 깼다

2021. 6. 2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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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운전' 논란 일으킨 구본성 해임
자매 지분 59.6% 등에 업고 5년 만에 경영권 탈환

[비즈니스 포커스]



범LG가(家)의 오랜 장자 승계 전통을 깨고 딸들의 반란이 성공했다. 범LG가로 분류되는 식품 기업 아워홈 얘기다.

아워홈의 경영권을 두고 오빠와 동생이 5년여간 벌인 ‘남매의 난’은 막내 구지은 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1남 3녀 중 장남인 구본성 부회장이 동생인 구미현·명진·지은 등 세 자매의 공격에 해임되면서 삼녀인 구지은 캘리스코 전 대표가 5년 만에 경영권을 탈환했다.

아워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실적이 악화됐다. 2020년 상반기 기준 아워홈은 12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실적 악화도 문제였지만 구 부회장의 보복 운전 논란이 결정타였다.

구 부회장은 2020년 9월 서울 강남구 학동사거리 인근에서 보복 운전으로 상대 차량을 파손하고 운전자를 친 혐의로 2021년 6월 3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자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구 부회장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다음 날 주주 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구 전 대표 측이 상정한 대표이사 해임안을 통과시키고 구 전 대표를 신임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차녀 명진 씨는 구 전 대표의 후임으로 캘리스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아워홈 최대 주주는 지분 38.6%를 갖고 있는 구 부회장이다. 하지만 미현(19.3%)·명진(19.6%)·지은(20.7%) 등 세 자매의 지분을 합치면 59.6%에 이른다. 구 부회장 해임안의 통과에는 캐스팅 보트를 쥔 장녀 미현 씨의 의사 결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현 씨는 2017년 경영권 분쟁 때 구 전 대표가 아닌 구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구 전 대표는 신임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 성명문을 통해 “몇 년 동안 아워홈은 과거의 좋은 전통과 철학을 무시하는 경영을 해 왔다”며 “신임 대표로 과거 공정하고 투명한 아워홈의 전통과 철학을 빠르게 되살리면서 동시에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래픽=전어진 기자



 

 17년 헌신한 아워홈, 오빠에게 밀려나

아워홈 2세들의 경영권 분쟁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지은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삼성인력개발원, 왓슨 와야트 코리아의 수석컨설턴트를 거쳐 2004년 아워홈에 입사했다. 그는 아워홈 4남매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해 차기 후계자로 지목됐다.

구 대표는 10년 이상 아워홈의 외식 사업을 진두지휘했는데 사보텐 매장 확대와 타코벨의 프랜차이즈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아워홈의 실적을 끌어올렸다. 실제로 구 대표가 입사한 2004년 아워홈의 매출은 5000억원대에 불과했으나 2016년 1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2015년 2월 구 대표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부사장 승진 첫해 구 대표는 돌연 보직 해임됐다. 구 대표가 CJ그룹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기존 경영진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 대표는 보직 해임된 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정에 “그들의 승리. 평소 일을 모략질 만큼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면 아워홈이 7년은 앞서 있었을 것”이라며 “또다시 12년 퇴보, 경쟁사와의 갭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장자 승계를 유지하려던 구 회장의 의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과 무관한 일을 하던 오빠 구 부회장은 2016년 3월 아워홈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9개월 만에 아워홈 경영권까지 꿰찼다. 승승장구하던 구 대표는 구 부회장의 등장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 계열사 캘리스코 대표로 이동하게 된다. 구 부회장과 구 대표 간 경영권 분쟁의 시작이었다.

이후 아워홈 남매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2019년에는 아워홈이 캘리스코에 대해 식자재 공급 중단을 통보했고 구 대표가 이에 반발하며 법적 공방을 벌였다.

구 대표의 언니이자 아워홈의 3대 주주인 명진 씨는 캘리스코에 대한 식자재 공급 중단 결정에 대한 반발의 표시로 법원에 주주 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내기도 했다. 오빠 구 부회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법정 다툼 끝에 캘리스코는 식자재 공급 업체를 신세계푸드로 바꾸게 됐다.


그래픽=전어진 기자



 

 실적 개선·경영 투명성 확보 시급

아워홈 경영권 분쟁에 대해 재계에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 관리 실패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장자 승계 전통에 따라 후계자가 됐던 구 부회장이 적자를 내는 와중에도 오너 일가를 위한 고배당 정책을 고수해 왔고 정기 주총 개최 관련 법과 정관도 지키지 않았다.

장자 승계를 이어 가기 위해 아들 재모 씨의 사내이사 선임안과 이사 보수 한도 증액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등 윤리·책임 경영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다. 여기에 보복 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ESG의 사회(S) 부문과 지배구조(G) 부문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아워홈에서 범LG가 역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나온 배경은 혼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삼성가의 가풍을 이어 받은 영향이라는 해석이다. 아워홈은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에서 계열 분리됐다.

구 회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부인인 이숙희 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둘째 딸이자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다. 구 회장은 이숙희 씨와 혼인한 후 호텔신라와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대표를 지냈고 구 대표도 삼성인력개발원을 거쳤다. 구 부회장도 아워홈 경영에 참여하기 전 삼성물산과 삼성카드에 재직했다.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가와 달리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 참여가 활발하다. 구 대표와 사촌지간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기업의 CEO로 활발한 경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구 대표는 이번 경영 복귀로 범LG가의 유리 천장을 깼지만 돌아온 구 대표 앞에는 아워홈의 경영 쇄신과 함께 실적 개선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아워홈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단체 급식이 중단되고 외식 사업이 위축되면서 주력 사업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가정 간편식(HMR) 등 식품 사업과 외식 사업, 컨세션 사업(식음료 위탁 운영) 등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구 부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단일 최대 주주라는 점에서 향후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는 구 대표가 아워홈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폐쇄적인 가족 경영으로 지적 받아 온 만큼 IPO를 통해 경영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신사업 투자 재원도 확보할 수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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