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하반기부터 모의실험.. 현금 없는 사회 찾아올까 [심층기획 -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시대 성큼]

김준영 2021. 6.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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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만이 발행할 수 있는 법정통화
누구나 채굴할 수 있는 가상화폐와 달라
가격 변동 거의 없이 현금과 동일한 가치
현금 도난 방지·지폐 발행비 절감 등 장점
정부 통화량 조절 쉬워 물가 안정 등 가능
현금과 달리 중앙은행, 거래 데이터 통제
사생활 침해·국가의 '빅 브러더' 논란 우려
금융회사들 서비스 전반 큰 영향 불가피
예금 줄어 대출 여력 감소 등 부정적 효과
각국 준비작업 한창.. 도입 시기는 미지수
신용카드가 등장하고 각종 페이 결제 시스템이 확산하면서 일상에서 현금을 이용하는 경우는 현저히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거래의 비대면화도 촉진했다. 모바일 결제, 각종 페이 플랫폼을 활용한 결제가 급증하는 추세다. 경제 및 금융시스템의 디지털화 속도도 앞당겨졌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급증하면서 어느덧 디지털화폐에 대한 개념도 익숙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각국의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다. 디지털화폐이긴 하지만 법정화폐로서 민간의 가상화폐와는 엄연히 범주는 다른 만큼 상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올 하반기 CBDC 모의실험 착수

한국은행은 올해 하반기부터 CBDC의 처리,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모의실험에 착수한다. 이를 통해 제조부터 발행, 유통, 환수, 폐기 등에 이르는 CBDC의 생애주기별 처리 업무와 송금, 대금결제 등 서비스 기능도 실험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 3월 CBDC 모의실험 관련 컨설팅을 받고 업무 프로세스 설계, 시스템 구조 설계, 구축사업 실행계획 수립 등을 마무리한 상황이다. 이후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CBDC 모의 시스템 구축과 가상환경 테스트가 이뤄진다.

CBDC는 블록체인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발행할 수 있는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은행만이 발행할 수 있는 법정 통화다. 우선 화폐로서의 기능과 가치 측면부터 차이가 있다. CBDC는 가치 변동이 거의 없이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발행방식은 정보의 보관과 관리를 중앙은행이 하는 ‘단일원장방식’과 블록체인 기술처럼 다수의 거래 참가자가 거래기록을 관리하는 ‘분산원장방식’ 모두 활용 가능하다.

반면 가상화폐는 민간이 발행한다. 연산 작업을 통해 누구나 일정량을 채굴, 발행할 수 있다. 가상화폐는 높은 가격 변동성 등으로 화폐로서 기능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기존화폐나 자산과 연동돼 있지 않아 비트코인의 경우 하루 만에 가격이 수백만원이 널뛰는 것처럼 변동성도 매우 크다.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원장 개념이 적용된 가상화폐는 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마약 거래나 비자금 조성을 위한 돈세탁, 탈세 수단 등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이유로 각국 중앙은행은 가상화폐에 대해 법정화폐와 분명히 다르다며 선을 긋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이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는 데에는 제약이 아주 많고, 내재가치가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또한 “암호화폐는 투기 수단”이라며 “실제 결제 수단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의 발행은 법정화폐와 별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CBDC의 발행이 가상화폐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고, 일부 투자자가 빠져나가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CBDC가 발행되면 현금 도난 방지 및 연간 1000억원에 육박하는 지폐 발행 비용 감소, 거래 신속성 증대 등 다양한 장점이 기대된다. CBDC가 발행되더라도 통화 총량 등 금융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새로운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편의성 및 효율성, 금융안정성 등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금과 달리 중앙은행이 거래 데이터를 통제하는 만큼 정부 입장에서 목적에 맞는 통화량 수급 조절로 물가 안정화를 도모해 안정된 통화·재정 정책을 꾀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같은 ‘헬리콥터 머니’ 지급 상황에서도 시간 및 비용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모든 자금 흐름에 대해 추적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하경제의 양성화라는 장점도 있지만, 이면에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비롯해 국가의 ‘빅 브러더’ 논란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한은도 CBDC가 100% 완전한 익명성을 부여하는 형태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개인 간 직접 거래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중개 기능을 담당하는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서비스 전반에 큰 영향이 불가피하다. 자금 수요가 CBDC에 몰리면서 은행의 예금이 줄어 자금조달 비용이 커지고 대출 여력이 감소하는 등 부정적인 효과들이 나올 수도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은행 예금의 대체재로 간주되면 CBDC 발행은 은행의 탈금융중개화(금융기관 이탈)와 디지털 뱅크런(대량 인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이 충분히 잘 갖춰지지 않을 경우 디지털화폐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금융취약계층은 경제활동에서 더욱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모든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CBDC가 발행돼 쓰일 경우에는 시중은행이나 카드사, 증권사 등 기존의 지급결제 시스템과 금융 생태계에서 문제없이 통용되어야 한다. 기존 금융시스템에 별다른 마찰 없이 잘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카드나 페이처럼 또 다른 결제 수단이 생기거나 최고금액권이 1만원에서 5만원으로 바뀌는 것처럼 겉으로는 큰 변화를 느낄 수 없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편의성 증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한은의 CBDC 유통 모의실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를 통해 한국은행 CBDC 사업 참여를 선언했고, 네이버는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자회사 라인플러스, 네이버파이낸셜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시중은행들도 이에 발맞춰 관련 플랫폼의 시범구축, 서비스 개편 등을 추진 중이다. 삼성SDS와 LG CNS, SK C&C 등 IT 서비스 ‘빅3’ 또한 사업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별 준비작업 한창, 도입 시기는 ‘글쎄’

한은은 CBDC에 대해 “모의실험은 발행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CBDC 관련 연구일 뿐, 실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려면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는 다른 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주요국 중 CBDC와 관련해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4년 인민은행 내에 전담 연구팀을 꾸리고, 화폐 관리비용 절감과 위조 및 자금세탁 방지 등을 위해 CBDC 발행을 추진해왔다. 알리페이 등 민간 지급결제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도 맞물렸다. CBDC와 관련한 특허만 84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선전, 쑤저우, 청두, 베이징 등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사용한 데 이어 최근엔 홍콩 주민을 대상으로 선전에서 역외 사용 테스트도 실시했다. 한은 측은 “디지털 위안화의 시범 사용 범위가 역외까지 확대된 것은 중국의 CBDC 준비가 기술적·실용적 측면에서 거의 완료됐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간 위안화를 국제화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기울였지만 그 성과가 부진했고, 일대일로 사업 등에 CBDC를 내세우며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일환이라는 평가도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중국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CBDC의 보편적인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주요 국가의 CBDC와 관련한 연구는 이론적인 측면을 넘어 기술적 실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의 86%가 CBDC와 관련한 연구, 혹은 실험을 추진 중이고, 60%는 관련 실험을 계획하거나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디지털화폐의 강점 덕분에 CBDC는 인구밀도가 낮거나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나라가 지난해 10월 소매용 CBDC(샌드달러)를 발행, 실사용에 돌입한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다. 우루과이나 튀니지 등 금융서비스가 다소 미흡한 나라에서도 이를 보완하기 위해 CBDC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카드나 페이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CBDC 도입을 검토 중인 셈이다.

현금 이용이 급격히 줄어드는 스웨덴은 지난해 2월부터 소매용 CBDC의 발행 및 사용법을 점검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올해에는 국민 여론 수렴을 거쳐 발행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아직 발행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캐나다와 싱가포르는 도매 CBDC 발행을 거액지급 결제시스템의 효율성 제고와 연관시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아직 소매용 CBDC의 국가 간 유통이 실현될 경우 국제 지급·결제시스템의 효율성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급격한 자금이동이나 자금세탁 및 불법자금 거래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의 노력도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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