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없고 어른은 사라진

김태규 2021. 6.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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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정세균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정 전 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이광재 의원, 김두관 의원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겨레 프리즘]김태규 정치팀장

지난 17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불간섭”이라며 “‘공존’이라는 키워드 속에 서로가 서로의 다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젊은층의 입당 행렬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젊은 세대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하며 “꼭 저희 정책 속에 녹여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단합을 명분으로 한 회식, 인생 선배의 ‘라떼 훈수’를 배격하는 젊은 세대들의 성향을 ‘공존을 위한 불간섭’이라는 표현으로 개념화한 것이다. 엠제트(MZ) 세대들이 이른바 ‘선배’들의 선을 넘는 간섭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를 ‘공존’의 당위와 연결해 세대적 요구로 풀어낸 것 자체가 새롭게 다가왔다. 제1야당의 30대 대표는 젊은 유권자들의 가치체계와 속성,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준석 대표가 젊은층의 성원을 ‘확고한 굳은자’로 붙잡아둘 방안을 고민하던 그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선 경선 일정을 논의하자’는 의원총회 소집 요구서를 돌리고 있었다. 이튿날 오전에 열릴 최고위원회의에서 당헌대로 ‘대선 180일 전 대선후보를 선출한다’는 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연서명은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쪽이 주도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정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선언식 현장에서도 의원들을 상대로 한 서명 권유가 이어졌다. 두 대선주자 쪽에서 모은 서명에는 의원총회 요구 정족수(재적 의원 174명의 3분의 1)를 넘는 66명이 동참했다.

민주당 당헌에서는 ‘의원총회의 권한’으로 △당의 일상적 원내 대책이나 입법 활동에 필요한 주요 정책 심의·의결 △국회에 제출하는 법안의 심의·의결 △국회 활동과 관련된 조직 구성 및 폐지 △원내대표 및 국회의장·부의장 후보 선출 △국회의원 제명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당의 대선 경선 일정은 의총이 논의할 수 있는 ‘원내 안건’이 아니었지만, 의총 소집 요구라는 의원들의 집단반발 탓에 민주당 지도부는 경선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에선 30대 청년 정치인이 대표를 맡았고 당장 국민의당과 통합 협상에 돌입했다.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입당을 둘러싼 신경전도 팽팽하다. 야권의 단일 대선후보 확정까지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쏟아질 거다. 야권에 비해 흥행 요소가 부족하니, 코로나19 집단면역 이후로 여당 대선후보 확정을 늦춰 ‘컨벤션 효과’라도 얻어보자는 주장도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해진 경선 일정을 조정하려면 최소한 경선주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선수’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면 원래 규칙대로 진행하는 게 순리다. 그럼에도 논의를 더 진행하려면 선수가 아닌 주변에서 공론화를 시도하는 게 맞다. 그러나 여권의 2·3위 대선주자들은 경선을 연기하자며 사실상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나섰다. 경선을 흥행시켜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충정’보다 시간을 벌어 역전을 노리는 ‘계산’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2년 전 민주당 내부에서는 20대의 지지가 저조한 이유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이 잘못된 탓’이라는 분석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홍영표 당시 원내대표가 “20대 청년과 관련해 우리 당 의원들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고 사과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 발언은 돌발적인 설화가 아니었으며 민주당 주류인 ‘긴급조치·86세대’가 20대를 바라보는 주된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 교육을 잘못 받은 어린 세대를 훈계할 자격은 ‘권위 있는 어른’에게 있다. 그러나 경선 일정을 연기하자며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민주당에 ‘어른의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당엔 젊은층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해 지지를 복원해낼 수 있는 유력한 청년 정치인도 없다. 그곳에서 청년은 성장하지 못했고 어른은 낡아 사라졌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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