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회의론..'자율주행' 실현 어려운 5가지 이유
②택시기사 등 기존 노동자 반대 가능성
③완성차 판매 감소 우려
④보안·데이터 사고 책임 제도 정비 필요
⑤사회의 신기술 수용에 시간 걸려
사람의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달리는 자율주행 기술의 현실 가능성을 놓고 회의론이 부쩍 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가 눈앞의 미래인 것처럼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실제 기술 구현까진 갈 길이 한참 멀다는 얘기다.
최근의 이런 분위기는 지난 15일 서울대 경영대와 보험연구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뚜렷하게 엿보였다. ‘모빌리티 산업의 변화와 보험’을 주제로 개최한 이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자율주행 기술의 실현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석승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자율주행 레벨 4∼5단계가 가능한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 자율주행 연구자인 이경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도 “레벨 5단계의 자율주행차가 나오는 것은 굉장히 먼 일”이라며 “레벨 4단계 역시 자동차 사용 도로 등 인프라 구축과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SAE)에 따르면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은 모두 6단계로 구분된다. 레벨 0은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수동 운전, 레벨 1∼2는 고속도로 등 특정 환경에서 기계가 운전자의 운행을 도와주는 단계다. 자동차가 스스로 교통 상황을 파악하고 운전하는 레벨 3부터는 조건부 자율주행, 운전자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레벨 4∼5를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으로 본다.
자율주행 기술이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도 레벨 2.5∼3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차도 고속도로에서 이용할 수 있는 레벨 3단계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 구글이 2009년 자율주행차 개발에 처음 뛰어든 뒤, 여러 업체와 학계, 정부가 투자에 나섰으나 10년이 지나도록 여태 중간 단계까지도 가지 못한 셈이다.
전문가들이 레벨 4∼5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구현이 시기상조라고 보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막대한 비용이다. 김일평 삼성화재 자동차보험전략팀장은 “스마트 도로 시설, 모바일 네트워크 등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는 굉장히 늦게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하려면 도로 위의 많은 변수를 통제해야 한다. 자율주행차에 적합한 전용 도로를 깔고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 대부분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자율차여야 안정적인 기술 구현이 가능하다.
기술 개발 자체에도 많은 돈이 든다. 영국 경제 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구글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관계사인 웨이모가 투자금 25억달러(약 2조8천억원)를 추가 조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초 32억달러(약 3조6천억원)를 투자받고 또다시 자금 유치에 나선 것이다.
이해관계자와의 갈등 조율도 만만찮은 숙제로 지목됐다. 김 팀장은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택시 기사 등 수백만 운전직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면서 “‘타다’ 사례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과연 자율주행차가 수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차 1대를 공유 차량으로 전환하면 차량 15대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며 “완성차 업체도 거대한 소매 판매 시장을 포기하고 사업 전환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운전으로 먹고사는 노동자의 반발과 자동차 제조사의 매출 감소 가능성이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제도 정비와 기술 수용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박준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국 연방 정부가 2017년 자율주행차의 규제를 과감하게 줄여주는 법안을 마련해 금방 통과될 분위기였으나 아직 진행이 안 되고 있다”며 “기술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이유였으나 본질적으로 자율주행차의 통신 보안과 데이터 관련 사고 발생 시 책임 문제에 관한 쟁점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선영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설령 자율주행 기술이 가까운 시일 내에 개발되더라도 기술 구현이 가능한 인프라를 조성하고 이용자인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빅토리아 교통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에어백이 처음 개발된 후 상용화를 거쳐 일반 차량에 보편적으로 보급되기까지 25년이 걸렸다. 이처럼 자율주행 신기술을 사회가 수용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릴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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