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끼리 탈북 안 도울 수 있나, 날 스페인 보내면 북이 암살 노릴 것”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1. 6. 2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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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이 만난 사람] ‘자유조선’의 탈북 지원 돕다가 미 검찰에 기소된 크리스토퍼 안

2019년 마드리드 주스페인 북한대사관에 반북 단체인 ‘자유조선’(구 천리마민방위)의 에이드리언 홍 등 10여명과 침입한 혐의로 체포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0)씨. 스페인 정부가 미국 정부에 그를 인도해 달라고 요구, 미국에서 같은 해 4월 이를 결정하는 재판이 시작됐다. 조만간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안씨 변호인단은 “FBI가 크리스토퍼 안이 스페인에 인도되면 북한에 암살당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최대 24년의 징역형 가능성이 있는 스페인으로 인도되지 않으려 법적 투쟁을 벌여온 안씨를 9일부터 화상과 이메일로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크리스토퍼 안이 본지 인터뷰에서 “마드리드 작전 후 내가 모르는 이유로 이름이 공개됐다”며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말한 건 FBI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7년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왼쪽)과 함께 있는 모습. /자유조선 홈페이지

누구라도 나처럼 했을 것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심지어 당신의 자유까지도… ‘자유조선’에 어떻게 가입했나.

“나를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다. 그런데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자유조선과 거리를 두려는 것은 아니지만, 꼭 이 조직의 ‘회원’이나 ‘리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누군가 돕기로 할 때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내가 받았던 것 같은 전화를 받았다면, 도울 수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네가 돕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죽을 거야’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은 ‘노(No)’라고 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위험한 작전을 하게 됐나.

“내게 ‘봉사’란 해병대원으로 해외 파병을 다녀와서, 특히 이라크전에서 돌아와서, 행복해지려 내 삶에 꼭 필요하다고 느낀 무언가였다. 전장에서 많은 폭력과 비극을 경험한 뒤 집에 돌아오면 ‘무엇을 위해서였지? 왜 사람들이 그런 희생을 해야 했지?’라고 묻게 된다. 내 답은 ‘내 삶의 일부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바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안씨의 변호인단이 재판을 통해 알린 정황은 미 검찰이 주장하듯 일방적인 침입이 아니다. 안씨 등은 북한에 남은 친지들이 보복당할 것을 우려, ‘납치를 가장한 탈북’을 시켜달라고 요청한 북한 외교관들을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계획을 몰랐던 한 북한 외교관의 아내가 대사관 밖으로 탈출해 스페인 경찰에 신고하면서 일이 틀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이 사건을 계획한 에이드리언 홍과는 어떤 관계인가.

“누가 모든 것을 계획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탈북자 지원 활동과 많은 다른 종류의 비영리 자선 단체 일을 해왔다. 미국의 참전 용사 권익 단체에서도 일했고 노숙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단체에서도 일했다. 에이드리언은 그런 일들을 하면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북한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 구원자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일가의 망명을 도왔고. 마드리드에서 북한 외교관을 탈북시키려 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전 세계의 많은 보통 사람은 북한을 비극으로 여기지 않는다. 좀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지도자가 있는 북한을 무시해도 좋은 농담처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코리안이다. 코리안 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코리안이다. 그리고 이 노스 코리안(북한 사람)들도 코리안이다. 우리 코리안들이 만약 같은 민족이 어떤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세계 다른 사람들이 왜 신경을 쓰겠나.”

-김한솔에 대한 느낌은.

“김한솔을 만났을 때 그가 북한 사람이나 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17세에 암으로 선친을 여읜) 나처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내게 그것은 코리안이 다른 고통 받는 코리안을 보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돕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돕겠나.”

-김한솔이 현재 어디 있는지 아는가.

“모른다. (대만 공항에서 헤어질 때) 한솔과 모친, 여동생을 안아주고 행운을 빌어줬다. 그리고 내가 가진 현금을 다 줬다. 그때 마지막으로 그들을 봤다.”

이유 모를 美 정부의 돌변

-자유조선과 미국 정부는 무슨 관계였나. CIA의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고 연방수사국(FBI)과 협력 관계였다는 말도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런 중요한 일을 하려면 CIA나 FBI 같은 곳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에이드리언이 미국 정부와 어떤 정도의 관계였는지, 어떤 관계가 있기는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FBI나 CIA와 어떤 공식적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CIA가 나를 아는 것은 (김한솔의 제3국 망명을 도왔을 당시) 대만에서 그들과 얘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결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선 크리스토퍼 안 부부 모습. /변호인 제공

-2017년 당신이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제3국으로 가려는 김한솔과 그의 어머니, 여동생을 보호하고 있었을 때, 결국은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나타나 그들을 데려갔다고 알려져 있다. 공항에 나타난 사람이 CIA 요원인지 어떻게 알았나.

“김한솔 가족을 타이베이 공항에서 급히 다음 장소로 이동시키려 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이 탑승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천리마민방위(자유조선의 전신)에 상황을 알렸다. 그랬더니 ‘CIA 요원 두 명이 만나러 올 텐데 그중 한 명의 이름이 웨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서 웨스가 나타나 자신을 소개했을 때 즉각 누구인지 알았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에이드리언 홍이 CIA와 함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전혀 모른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몇 년 전 에이드리언과 CIA 연락선이 있는지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 에이드리언은 매우 솔직하게 CIA는 이런 일들을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핵무기 같은 큰 것들이다. 그들은 정보를 모으는 데 특화돼 있다. (북한)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하고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길을 제공하려는 일들을 CIA는 하지 않는다.”

-FBI와는 어땠나.

“마드리드 가기 전에 나는 FBI와 얘기해 본 적도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돌아온 뒤 에이드리언이 ‘FBI에 네가 개입했다고 말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물론이지, 난 숨길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FBI가 나를 찾아와 얘기했다. 나는 그들을 집으로 초청해 내가 만든 과자와 차, 커피를 대접했다. 내 활동과 그 동기에 대해 좋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당신들이 보기에 (내 활동이) 괜찮냐’고 묻자 그들은 ‘우리가 보기엔 다 괜찮다’고 했다. 그 뒤로 난 다시 평범하게 살았다.”

-왜 FBI가 태도를 바꿨나. 미국 정부는 왜 당신을 스페인으로 보내고 싶어 하나.

“모르겠다. 왜 FBI가 이 일에 대한 접근법을 바꾼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들(미국 정부)은 나를 몇 년 동안 알고 있었다. 나는 아주 평범하게 살았다. 여러 비영리 기관, 자선 단체에서 일했고 자유조선은 내가 자원봉사한 수많은 단체 중 하나일 뿐이다.”

-FBI나 CIA와 관계가 없었다면 ‘몇 년 동안 알고 있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CIA가 (김한솔 망명 같은) 무언가에 개입하려면 누가 관여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내가 내 신분을 밝혔고 CIA에 매우 개방적이고 정직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알았다. FBI가 나를 안다고 말한 것은 에이드리언이 FBI에 내가 개입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FBI나 CIA가 내가 개입한 정도나 내가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바이든·文 대통령 믿는다

-지난달 LA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마지막 공판 후 담당 판사가 ‘재산상 이익을 추구한 증거가 없다’며 강도 혐의는 기각했다. 조만간 선고가 이뤄질 수도 있는데 법원의 연락은 있었나?

“들은 바 없다. 아직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옳은 결정을 해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동시에 이것이 매우 까다로운 결정이란 것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판사가 고려해야 할 많은 다른 측면이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71세의 모친과 99세의 외조모를 부양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그간 매우 힘들어 하셨다. 처음에 어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나는 살기 위해 서로 아주 긴밀히 지내왔다. 그래서 어머니께 ‘이런 풍파가 우리 가족에게 닥쳐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다. 마드리드 사건 전까지 내가 (자유조선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 아내도 몰랐고 내 가족도 몰랐다. 아내는 내가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하고 있는데 때로 어떤 질문들에는 답할 수 없다는 것만 알았다.”

'자유조선' 활동으로 곤경에 처한 크리스토퍼 안(40)이 과거 미 해병대원으로 1년 간 이라크전에 파병됐다가 복귀한 뒤 가족들과 찍은 사진. 99세의 외조모와 71세의 모친이 있는 그는 주스페인 북한대사관 사건 이후 경제활동이 어려워졌고 고펀드미(https://www.gofundme.com/f/fight-us-marine-extradition-to-north-korea)에서 그를 돕기 위한 모금이 이뤄지고 있다. / 변호인 제공

안씨는 체포된 뒤 미국 구치소에 90일 동안 잡혀 있다가 어머니와 남동생, 처가의 집을 담보로 보석금 130만달러(약 14억7000만원)를 내고 풀려났다. 전자 발찌를 하고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와 예전처럼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는 그를 돕는 모금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을 부양하기가 매우 힘들 것 같은데.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이 터지기 전에는 막 시작하려는 새 회사에 여러 투자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 사라졌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지원해 봤지만 면접을 잘 보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어려웠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이커머스를 지원해주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

-마드리드 사건 이후 북한의 암살 위협을 얼마나 느끼고 있나.

“마드리드 작전 전에는 내가 이런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미국 정부, 에이드리언과 나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보냈고 위협을 느낀 적도 없다. 하지만 (마드리드 사건 이후)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내 이름이 공개됐다.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말한 것은 내가 아니라 FBI다. FBI는 미국 내에도 북한에 의한 위협이 있고, 스페인에 인도될 경우 그 위협이 급격히 비례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FBI가 말한 것을 믿기로 했을 뿐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처럼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고위 관료들에게 직접 얘기할 기회가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그들을 믿는다고 말하겠다. 나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해하려고 한다면 옳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올바른 결정을 하라고 선출해 준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외교를 이해하고 이 사안의 복잡성을 이해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안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직후인 2000년 미 해병대에 입대해 8년간 복무했고 이라크에도 1년간 파병됐다. 전역 후 버지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여러 봉사 활동을 하다가 북한 자유화 운동 단체인 ‘자유조선’(구 천리마민방위)과 연이 닿았고, 2017년 김정남 암살 직후 그 아들 김한솔 일가의 제3국 망명을 도왔다가 체포돼 스페인 인도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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