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칼럼]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워싱턴 기념비엔 당시 고통 절절
태평양 건너 아시아 작은 나라서
전사한 5만여명 청년들 기억해야
미국 역사상 최악의 패전은 어디일까? 2차대전 당시 진주만 피격이다.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애리조나함이 비극의 상징이다. ‘예고 없는’ 일본군의 공습으로 미군 전사자 2403명 중 절반에 가까운 1177명이 배와 함께 수장됐다. 애리조나함의 참혹한 최후는 미국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 결국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미 국방부는 1962년 애리조나함 선체 상부에 ‘USS 애리조나 기념관’을 건립해 아직도 함내에 유해로 남아 있는 900명의 승무원들을 기리고 있다.
장진호전투는 비극 그 자체였다. 당시 미 해병이 겪은 극심한 고통은 워싱턴 링컨기념관 뒤쪽에 세워진 6·25전쟁 기념 조형물에 잘 나타나 있다. V자형으로 늘어선 실물크기보다 약간 큰 19명의 군인상은 육·해·공·해병으로 백인·흑인·히스패닉계 인종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얼굴에는 전쟁에서 오는 공포가 적나라하게 새겨져 있다.
나는 워싱턴에 갈 때마다 도심에 있는 이 공원에 습관처럼 들른다. 한국전 조형물은 보는 이에게도 전쟁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끼게 한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새겨진 동판이 눈길을 끈다. 판초우의를 덮어쓴 지아이(GI)들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정녕 자유가 공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기념 동판에는 낙동강, 장진호 등지에서 무려 5만4245명의 꽃다운 젊음이 전사했다고 적어 놓았다.
사실 6·25전쟁은 오랫동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리며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때마침 탄생한 컬러 TV와 맞물려 안방까지 생중계된, 화려했던(?) 베트남전쟁에 비해 존재감은 미미했다. 미국인에게 6·25는 2차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낀, 잊고 싶은 전쟁에 불과했다. 진보정권이 들어선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6·25는 급격하게 빛바래 가고 있다.
그러나 기념공원에 설치된 전사자의 이름을 한번 눌러 본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이름을 누르면 붉은 테두리의 종이가 삐죽 나온다. “조지프 C. 제르보, 육군 일병, 군번 12322768, 1931년 뉴욕주 킹스 출생, 1950년 9월 13일 한국전 작전중 19세로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종이에는 다시 작은 글씨로 “고 제르보 일병은 미육군 1 기갑사단 5연대 정찰병으로 한국전에 참전, 서부전선에서 9월 13일 적군과 교전중 전사했다”고 덧붙인다.
열아홉 어린 미국청년이 “조국의 부름을 받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태평양 건너 멀고 먼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오자마자 며칠 뒤 전사했다”는 것을 알리는 쪽지다. 기록을 읽는 나의 마음은 순간 울컥해졌다. 맞다. 전쟁은 언제나 악한 자보다는, 선한 사람부터 영문도 모른 채 먼저 죽게 된다. 소포클레스의 말이다. 불현듯 코흘리게 시절 불렀던 6·25노래가 생각난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청록파 시인 박두진 선생이 지은 노랫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잊고 살고 있다. 나흘 뒤가 6·25 이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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