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 한약 쓴맛 감추는 단순한 감미료 아냐..해독 작용도 탁월 [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의과학]

정환석 |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장 2021. 6. 2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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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 학과 내 소식지 제목을 공모한 적이 있는데, 최종 선정된 제목은 바로 ‘감초’였다. 감초는 한약의 쓴맛을 덜어주고 모든 약을 조화롭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과에서 소식지가 감초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명이었다.

‘약방의 감초’라는 말처럼 양은 소량이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처방에 감초가 들어간다. 감초의 효능을 보면 모든 약을 조화롭게 한다는 내용과 해독 작용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한때 감초의 용도는 한약의 쓴맛을 감추는 단순 감미료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었다. 감초의 주성분인 ‘글리시리진’이 설탕의 50배에 해당하는 강력한 단맛으로 다른 약의 쓴맛을 감추니 약을 조화롭게 하고 해독시킨다는 말은 미사여구로써 포장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깨지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 적이 있다.

우리 몸에 독소가 들어와 간이나 신경세포 등을 손상시키면 세포 안에 있던 ‘HMGB1’이란 단백질이 방출된다. 이 단백질이 방출되면 주변 세포들에게 자기가 속해있던 세포가 죽었다는 신호가 나가면서 위험을 알리게 된다. 이러한 경보가 울리면 주변 세포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염증성 세포 활성 물질을 방출한다. 인체에 필요한 방어 작용이지만 이런 작용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아 과도해지면 간염, 관절염, 위염 등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래서 과도하게 방출된 HMGB1 단백질을 무력화해 주변 세포 손상을 차단하는 약의 개발이 한창이다.

흥미롭게도 이 단백질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물질 중 하나가 글리시리진이고, 글리시리진을 가장 많이 함유한 식물이 감초다. 약의 법전이라 불리는 약전에서 감초를 한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글리시리진을 2.5% 이상 함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른 식물 뿌리가 단일 화합물을 2.5% 이상 함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2.5% 이상이란 수치는 상당히 많은 함유량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글리시리진을 다량 함유하는 감초는 독소나 상처로 인해 발생한 HMGB1 단백질이 과도해져 필요 이상의 염증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해독제 역할을 한다. 현재 글리시리진은 다양한 간 손상 질환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감초가 단순 감미료가 아닌 실제로 해독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예로부터 감초는 대부분의 처방에서 소량을 사용해왔다. 현대 과학기술에 의해 감초에는 글리시리진 이외에도 스테로이드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알려져 대량 사용을 주의하고 있는데,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지혜가 생겼는지 감탄하게 된다. 한의학은 오랜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학문이다. 맨땅에서 무작위로 보물을 찾는 것보다는 기존 임상시험 기록을 바탕으로 보물을 찾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감초의 해독 효과처럼, 잘 이해되지 않았던 옛것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생기면서 기존의 것이 새롭게 조명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남의 대변을 대장에 이식해서 장 질환을 치료할 것이라고 10년 전에 얘기하고 다녔다면 돌멩이를 맞았겠지만, 지금은 신의료기술로 인정돼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장내 미생물의 역할이 최신 과학기술로 밝혀지면서 만들어진 치료법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꾀한다면 한의학에서 새로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많을 것이다.

정환석 |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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