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 가브리엘 가르시아마르케스 [나푸름의 내 인생의 책 ①]

나푸름 | 소설가 2021. 6. 2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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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된 죽음과 목격자들

[경향신문]

피해자의 죽음을 알리는 것에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가해자는 이미 27년 전에 붙잡혔다. 그러니 이 소설은 범인을 밝히는 추리물도, 가해자를 응징하는 복수극도 아니다. 이것은 이미 밝혀진 27년 전의 살인 사건에 관한 회고록이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마르케스가 고향 마을에서 목격한 명예살인 사건에서 출발한 이야기이다.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30여년이 흐른 뒤, 마르케스는 소설 내에서 피해자인 산티아고 나사르의 친구이자 화자로 등장하여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 전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명확한 이 사건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친구의 죽음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진실은 사건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 증거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우리는 나사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주변인들에게 충분히 주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의 죽음이 본인과 가족을 제외한 모두에게 예고되었던 명예살인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 안에서 죽지 않을 수 있었던 무수한 상황을 비껴간다. 목격자들의 증언 속에서 나사르의 죽음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나 우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피할 수 없는 사고였을까.

주변인들의 방관은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몸을 통과하는 가해자의 칼날을 묵인하는 행위와 같았다. 그러니 숙명이고 운명이라는 말은 그저 남은 자들의 변명인지 모른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죄책감과 절망은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죽음은, 사건이 일어났던 27년 전과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피해자의 죽음은 오로지 가해자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닌, 그들 모두가 용납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나푸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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