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의 무수한 점들..세상을 보는 '렌즈'죠

전지현 2021. 6. 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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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보물섬'
호주 원주민 출신 작가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 재해석
영국선원 반란 사건도 작품에
볼록한 점으로 렌즈 형상화
'관점따라 다른 해석' 상징
다니엘 보이드 `Untitled (FFITFFF)`.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39)는 시드니 대학교 차우착윙 박물관 소장품인 화려한 접시에 끌렸다. 소설 '보물섬'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이 사용했던 접시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스티븐슨은 1888년 남태평양 사모아섬으로 이주해 토착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보이드는 이 접시에 음식을 올려놓고 스티븐슨이 나눴을 대화, 설거지를 했던 사람들의 생각 등을 상상했다.

유물이 시공간을 초월해 많은 것을 연상시키는 데 영감을 얻은 작품들이 서울 국제갤러리 개인전 '보물섬'에 걸려 있다.

꽃무늬가 새겨진 둥근 접시와 바탕 화면에 볼록한 점들을 무수히 찍어서 접시로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어느 행성 같기도 하다. 보이드에게 이 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다. 밑그림을 그린 후 투명한 풀(glue)로 볼록한 점을 찍어 렌즈 형상을 만들었다.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기에 수많은 점들을 찍어 다양성과 복수성을 나타낸다. 작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주 원주민 출신이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호주 식민지 역사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1728~1779)과 조지프 뱅크스(1743~1820)는 침략자에 불과하다. 2005~2009년 이들을 소설 '보물선'에 나오는 해적과 연결시킨 연작 'No Beard'를 발표했다. 소설에 나온 보물섬 지도를 그린 '무제(TIM)'와 스티븐슨 초상화 '무제(FAEORIR)'가 이번 전시장에 걸려 있다.

검은 돛단배를 그린 작품 '무제(FFITFFF)'는 1789년 '바운티호의 반란 사건'을 차용했다. 남태평양 타히티섬에서 흑인 노예들에게 먹일 빵나무 묘목을 실고 자메이카로 향하던 영국 해군 선박 바운티호 선원들이 가혹한 대우를 한 함장을 구명보트에 태워 망망대해로 보낸 사건이다.

전시장에는 1962년 배우 말런 브랜도가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 포스터 이미지를 담은 가로 3m 대작 '무제(POMOTB)'가 펼쳐져 있다. 바운티호 복제선 뱃머리에서 얻은 나무조각으로 액자를 만든 거울 조각 작품 '무제(AMMBGWWFTB)'도 선보인다.

영화와 문학 등을 토대로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조명해온 작가는 자신의 뿌리를 추적하는 작업에도 열정적이다. 원주민 역사를 추적해온 그는 "내 작품은 모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찰,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선조들의 존재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해왔다.

다니엘 보이드 `무제(OUATIS)`.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전시작 '무제(GGASOLIWPS)'는 1928년 폴 섹스턴 선장과 함께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탐사에 참여한 작가의 증조부 해리 모스만을 담았다. 모스만은 호주 정부가 원주민 어린이들을 강제로 가족들과 분리시킨 정책의 희생자를 칭하는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에 속한다. '무제(TDHFTC)'는 전통 춤 공연을 준비하는 친누나가 거울을 보면서 화관을 쓰는 모습을 담았다.

전시작 25점 앞에 바짝 다가서면 무수한 점으로 가득차 있지만 조금씩 거리를 두면 서서히 형태가 보인다. 나와 타인의 관계와 거리를 표현했다고 한다.

수많은 점들이 움직이는 영상작품은 우주와 작가의 관계를 담았다.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레지던시 작가로 있을 때 만져본 달과 화성 파편에 영감을 받아 빛과 시공간을 탐색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린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이 '완판'됐을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작 상당수가 이미 팔렸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2017년 유명 전시기획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아사드 라자가 브뤼셀 보고시안 재단에서 선보인 '몬디알리테' 등 주요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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