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애니메이션 '루카', 인간 친구와 우정..혐오도 미움도 녹아내리네

강영운 2021. 6. 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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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되고픈 바다괴물 듀오
이탈리아 마을서 모험 펼쳐
소년은 물이 지겨웠다. 태양이 쬐는 마을 광장을 두 발로 걷고픈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도 날아보고 싶었다. 불가능한 꿈이었다. 그는 어류(魚類)였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주변의 만류,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지만 꿈은 더욱 영글었다. 영화 '루카'는 바다괴물 소년의 모험 이야기다. 지중해를 품은 이탈리아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여름 풍경화가 펼쳐진다.

바다괴물 루카는 왈가닥 친구 알베르토를 따라 나섰다. 수면 위로 어느 날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공기에 닿은 접촉면부터 비늘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인간으로의 변종(變種). 육지에 첫발을 디딘 루카와 알베르토 '인생(人生)'의 시작이다. 걸음걸이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평생 지느러미로 헤엄쳤기 때문에 직립보행조차 난관이다.

이내 영장류의 삶에 적응한 그들은 이전부터 꿈꿔온 오토바이를 얻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이탈리아 국민 스쿠터 브랜드 '베스파'가 달린 경주에 등록한다. 수영·사이클·파스타 빨리 먹기 3종 대회다. 물에 닿으면 다시 바다괴물로 변하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둘은 수영을 해줄 새로운 인간 친구 줄리아와 의기투합한다.

이탈리아 출신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 내성적이었던 그와 함께 어울린 말괄량이 친구의 우정이 바탕이 됐다. 실제 카사로사 감독의 친구 이름 역시 알베르토였다고 한다.

카사로사 감독의 영감을 한 폭의 정물화처럼 구현한 건 한국인 애니메이터다. 올해로 21년 차 애니메이터인 조성연 마스터라이터와 10년 차인 김성영 레이아웃아티스트가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각각 애니메이션 내 조명과 카메라 연출 담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빛이 함뿍 담긴 마을, 노을 지는 해변, 널려 있는 빨래 등이 정겹다. 막힌 하늘길에 여행을 그리워하는 관객들에게 한 폭의 쉼터를 제공한다. 두 애니메이터는 "인터넷에서 이탈리아 하늘이 어떻게 노을 지는지 연구하기도 하고, 직접 산 위에 올라가 석양을 연구해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말했다.

변종을 꿈꾸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오랜 직장생활로 매너리즘에 빠진 중년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든 청춘들이 스크린 속에서 위로받게 된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성과 뻔한 메시지에도 관객은 모두 미소를 머금었다. 인종 간 혐오가 넘실대는 현대 사회를 에둘러 비판한 우화로도 읽힌다. 바다괴물과 인간은 서로에 대한 무지로 혐오하다가 비로소 이해로 나아간다. 혐오해야 할 건 인종이 아니라 혐오라는 마음 그 자체라는 걸 동화가 일깨운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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