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떠나자..노골적으로 미국 원조 바라는 베네수엘라 독재자

이윤정 기자 2021. 6. 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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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8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블룸버그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블룸버그TV 캡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가한 무더기 제재로 궁지에 몰렸던 베네수엘라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희망에 찬 눈길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대를 맞아 관계를 개선하고 제재 완화를 통해 경제를 사릴겠다는 희망에 부풀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해외 원조를 기대하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에서 금박장식으로 빛나는 루이16세 시대 의자에 앉아 자신감을 뽐냈다. 85분간 이어진 인터뷰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이며 잔인한 미국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면서 “베네수엘라는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했던 제재를 바이든 대통령이 풀어주길 기대하면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남미 좌파 포퓰리즘의 상징 격이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암으로 사망한 후 부통령이던 마두로가 강압적으로 권력을 잡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베네수엘라에 전방위 제재를 가해 왔다. 미국은 마두로 부부와 측근들의 금융거래를 제한하고 자국 기업에 베네수엘라와의 거래를 금지시켰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두로 대신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지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지난 2년 간 ‘한 국가 두 대통령’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면서 마두로 대통령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마두로 대통령의 사회주의 여당은 야권의 보이콧 속에 지난해 12월 치러진 국회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했고, 국회를 탈환한 후 새 국회의장을 앉혔다. 과이도의 국회의장 지위가 흔들리면서 ‘임시 대통령’ 명분도 흔들리고 있다. 미 상원은 과이도를 계속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유럽연합(EU)은 과이도 국회를 “물러나는 국회”라고 표현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마두로 대통령의 입지는 더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은 독재자 마두로 대통령을 베네수엘라에서 축출하는 데 실패했고, 이제 그는 바이든 정부에 환심을 사려 애쓰고 있다. 독재자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지난 4월에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기아에 허덕이는 자국 어린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입국을 허용했다. 부패 혐의로 감금했던 미국 정유회사 시트고의 임원 6명을 석방하고 2017년 반체제 인사를 감금·고문해 숨지게 한 사건 등에 대한 재조사도 실시하기로 했다.

한때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는 현재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이 매년 약 2300%에 달하며 경제 규모는 9년 만에 80%나 줄어들었다고 추정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행정부 제재를 거치면서 가장 깊은 불황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41만 배럴로 10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출 수입의 99%가 사라졌다. 전국적으로 범죄 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폭력·가난·부정부패를 못견뎌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이 해외로 도피했다. 콜롬비아와의 국경은 무법자의 땅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마두로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제재를 완화할지는 미지수다. 마두로 정권은 미국이 경계하는 러시아, 중국 등과 친분을 과시한다. 마두로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바이든 정부가 그의 이중적인 행보를 눈감아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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